공과 도넛을 나란히 놓으면 누구나 한눈에 둘을 구별한다. 도넛에는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공에는 없다. 그런데 이 ‘구멍이 있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전체를 내려다보지 않고 오직 표면 위를 기어 다니는 것만으로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 표면에 사는 개미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이 개미는 자기가 공 위에 있는지 도넛 위에 있는지 구별할 수 있을까?
방법이 하나 있다. 개미에게 긴 실을 쥐여 주고, 한 점에서 출발해 표면을 따라 크게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그런 다음 실의 양 끝을 붙잡은 채 고리를 살살 조여 본다. 공 위에서라면 어떤 고리를 그리든 실은 부드럽게 미끄러져 연속적으로 한 점으로 오그라든다. 그러나 도넛 위에서는 다르다. 구멍을 통과하도록 감긴 고리는 아무리 당겨도 도넛에 걸려서 한 점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표면 위의 고리가 전부 한 점으로 오그라드는지 살피는 방법으로 개미는 자기가 사는 공간의 모양을 판별하는 결정적인 정보를 얻는다.
이 소박한 실 고리 이야기가 20세기 수학의 유명한 난제 중 하나로 자라났다. 1904년 앙리 푸앵카레가 던진 질문, 곧 푸앵카레 추측이다. 이 추측은 위상수학이라는 분야에서 100년 가까이 관심을 받았고, 상금 100만 달러가 걸린 밀레니엄 문제가 되었다. 더불어, 이 추측을 증명한 수학자가 그 공로로 수여된 상을 거절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고무판 위의 기하학
푸앵카레의 추측을 이해하려면 먼저 위상수학(topology)이 도형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야 한다. 위상수학은 길이나 각의 크기를 재지 않는다. 늘이고 구부리고 비틀어도 변하지 않는 성질만 따진다. 자르거나 붙이지만 않는다면, 찰흙 반죽처럼 한 도형의 모양을 마음대로 주물러서 다른 도형을 만들어도 위상수학의 눈에 두 도형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위상수학을 ‘고무판 위의 기하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육면체와 공이 같다. 모서리를 둥글게 밀어 주면 정육면체가 공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공과 도넛은 다르다. 도넛을 찢지 않고서는 구멍 하나를 없앨 방법이 없다. 커피잔과 도넛이 같다는 유명한 농담도 여기서 나온다. 커피잔에서 손잡이의 구멍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뭉개면 도넛이 되니, 위상수학적으로 둘은 같은 모양이다. 위상수학에서 두 대상을 이렇게 ‘같다’고 볼 때, 정확히는 위상동형(homeomorphic)이라고 부른다. [두 공간 사이에 양쪽으로 연속인 일대일 대응이 존재할 때 두 공간이 위상동형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찢거나 붙이지 않고 한쪽을 다른 쪽으로 연속적으로 변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위상수학은 도형을 어떻게 구별할까? 눈금자를 버렸으니 길이로는 구별할 수 없다. 대신 늘이고 구부려도 살아남는 성질, 이를테면 구멍의 개수 같은 것을 센다. 공의 표면과 도넛의 표면이 다르다고 판단하는 근거도 바로 이 구멍의 개수다. 그리고 앞에서 개미가 실을 사용하여 확인한 성질, 즉 모든 고리가 한 점으로 오그라드는지 여부가 이 구멍의 유무를 잡아내는 정교한 도구가 된다. 이 성질에는 이름이 붙어 있다. 어떤 공간 위의 모든 닫힌 고리를 그 공간 안에서 한 점으로 연속적으로 줄일 수 있을 때, 그 공간을 단순연결공간(simply connected)이라고 부른다. 공의 표면은 단순연결공간이고, 도넛의 표면은 그렇지 않다.
차원을 세는 법
푸앵카레의 추측은 보통 공의 표면 \(S^2\)에서 출발한 직관을 한 차원 높인 대상, 곧 3차원 구면 \(S^3\)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공의 표면’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몇 차원인지부터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공’이라고 부르는 속이 꽉 찬 덩어리와, 그 껍질에 해당하는 표면은 위상수학에서 전혀 다른 대상이다. 표면만 떼어 놓고 보면, 그 위에 사는 존재에게는 2차원의 자유도밖에 없다. 지구 표면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살지만, 지표면 위에서 움직일 때 실제로 쓰는 방향은 동서와 남북, 두 가지이다. 그래서 공의 표면은 3차원 공간 안에 놓여 있긴 해도 그 자체는 2차원이고, 이것을 2차원 구면(2-sphere)이라 부르며 기호로는 \(S^2\)라고 나타낸다.
이렇게 표면의 관점에서 차원을 세면, 구면을 임의의 차원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 \(n\)차원 구면 \(S^n\)은 \((n+1)\)차원 공간 안에서 한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을 모두 모은 것이다. 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S^n=\{\,x\in\mathbb{R}^{n+1} \,\mid\, \lVert x \rVert =1\,\} \] 여기서 \(\lVert x \rVert\)는 원점에서 점 \(x\)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n=1\)을 넣으면 평면 위의 원 \(S^1\)이 나오는데, 이것은 1차원이다. 원 위를 걷는 개미에게는 앞뒤 한 방향밖에 없기 때문이다. \(n=2\)를 넣으면 방금 본 공의 표면 \(S^2\)이고, \(n=3\)을 넣으면 우리 직관으로는 그려 볼 수 없는 3차원 구면 \(S^3\)이 된다.
이 \(S^3\)이 바로 푸앵카레 추측의 주인공이다. \(S^3\)은 4차원 공간 안에 놓인 3차원 초곡면인 셈인데,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4차원을 머릿속에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아도 수학적으로는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가우스와 리만이 다차원 기하학을 정립한 이래로 곡면의 성질은 그것을 담는 바깥 공간을 보지 않고도 내재적으로 따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S^3\) 위에 사는 존재는 자기가 사는 3차원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 성질을 조사할 수 있고, 우리는 그 조사 과정을 수식으로 표현한다.
푸앵카레의 질문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프랑스의 수학자로, 위상수학이라는 분야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그는 대수적 위상수학(algebraic topology)의 여러 도구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공간에 붙은 고리들을 대수적으로 다루는 기본군(fundamental group)이라는 개념이다. [어떤 공간의 한 점에서 출발해 그 점으로 돌아오는 모든 고리를, 서로 연속적으로 옮겨 갈 수 있으면 같은 것으로 묶는다. 이렇게 묶은 고리들의 모임에 자연스럽게 곱셈(고리를 이어 붙이는 연산)을 주면 하나의 군이 되는데, 이것이 기본군이다. 어떤 공간이 단순연결이라는 것은 그 기본군이 자명군, 즉 원소가 하나뿐인 군이라는 말과 같다.] 단순연결이라는 성질도 이 기본군의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된다.
푸앵카레는 처음에 다음과 같이 추측하였다. 어떤 3차원 공간의 여러 위상적 특징(구체적으로는 호몰로지라는 양)이 3차원 구면과 완전히 똑같다면, 그 공간은 3차원 구면일 것이라고. 그런데 1904년, 그는 이 추측의 반례를 찾아낸다. 호몰로지는 \(S^3\)과 똑같으면서도 정작 \(S^3\)은 아닌 공간이 존재했던 것이다. 오늘날 푸앵카레 구(Poincaré sphere)라고 불리는 이 공간의 정체는 단순연결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호몰로지만으로는 놓치는 정보를, 고리가 한 점으로 오그라드는지 여부가 붙잡아 낸 셈이다.
그래서 푸앵카레는 조건을 하나 더 얹어 질문을 다시 던진다. “경계가 없고 유한한 크기를 가진 3차원 공간이 단순연결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3차원 구면 \(S^3\)과 위상동형인가?” [더 정확히는 ‘닫힌 3차원 다양체’를 다룬다. 닫혔다는 것은 경계가 없고 전체 크기가 유한하다(컴팩트)는 뜻이다. 무한히 뻗어 나가는 3차원 공간 \(\mathbb{R}^3\)은 여기서 제외된다.] 이것이 푸앵카레 추측(Poincaré conjecture)이다. 풀어 말하면 이렇다. 3차원 공간에서 구멍의 유무를 판정하는 데에는 개미의 실 고리면 충분한가? 고리가 전부 오그라든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그 공간은 다른 가능성 없이 곧바로 구면과 같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직관적으로는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실제로 한 차원 낮은 2차원에서는 이 명제가 참이고, 증명도 어렵지 않다. 경계 없는 유한한 2차원 곡면이 단순연결이면 그것은 반드시 보통의 구면 \(S^2\)이다. 그러니 한 차원 올린 3차원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추측을 엄밀하게 증명하는 데에는 거의 한 세기가 걸렸다.
높은 차원이 오히려 쉬웠다
푸앵카레 추측은 3차원에 관한 물음이지만, 수학자들은 이것을 임의의 차원으로 넓혀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일반화된 형태는 이렇다. 닫힌 \(n\)차원 다양체가 \(n\)차원 구면 \(S^n\)과 호모토피 관점에서 구별되지 않는다면, 즉 호모토피 구면이라면, 그것은 \(S^n\)과 위상동형인가? [차원이 높아지면 ‘단순연결’ 하나로는 부족하고, 더 높은 차원의 고리들까지 모두 오그라든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호모토피 구면(homotopy sphere)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즉 \(S^n\)과 호모토피 관점에서 구별되지 않는 공간을 뜻한다.]
상식적으로는 차원이 낮을수록 다루기 쉽고 높을수록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1961년, 미국의 스티븐 스메일(Stephen Smale)이 \(n\ge 5\)인 모든 경우, 즉 5차원 이상에서 이 추측이 참임을 증명했다. [스메일은 손잡이 이론(handle theory)과 h-코보디즘 정리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높은 차원에서는 여유 공간이 넉넉해서, 얽힌 것을 풀어낼 자리가 충분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같은 시기 존 스톨링스(Stallings)와 크리스토퍼 지먼(Zeeman)도 비슷한 결과에 다다랐다.
더 높은 차원에 대한 추측이 먼저 증명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차원이 높으면 그만큼 도형을 움직일 여유가 많아진다. 2차원 평면에서는 두 곡선이 지나가다 부딪히기 쉽지만, 삼차원 공간에서는 한쪽을 살짝 위로 들어 올려 비켜 갈 수 있다. 차원이 더 올라가면 이렇게 서로 얽힌 것을 풀 방향이 넉넉해진다. 스메일의 증명은 바로 이 여유를 활용해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이었다. 반대로 낮은 차원에서는 움직일 틈이 좁아,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증명된 것이 4차원에 대한 추측이었다. 1982년 마이클 프리드먼은 \(n=4\)인 경우, 더 정확히는 위상수학적 4차원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했다. 4차원에서는 5차원 이상에서 통하던 매끄러운 손잡이 이론과 h-코보디즘 기법이 그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프리드먼은 4차원 위상다양체에 특유한 새로운 방법으로 이 벽을 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정작 푸앵카레가 처음 물었던 3차원뿐이었다. 5차원 이상이 먼저 풀리고 4차원이 그다음에 풀렸으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차원과 가장 가까운 3차원이 끝까지 남았다. 가장 손에 익을 것 같던 차원이 가장 끝까지 풀리지 않은 것이다.
휘어진 공간을 매끈하게 펴는 흐름
3차원의 벽을 넘어선 발상은, 뜻밖에도 위상수학이 아니라 기하학과 해석학에서 왔다. 그 다리를 놓은 사람이 미국의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이다. 1982년, 그는 리치 흐름(Ricci flow)이라는 방법을 들고나온다.
뜨겁게 달군 쇠막대를 가만히 두면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찬 곳으로 흘러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의 온도가 고르게 된다. 이 현상을 기술하는 것이 열방정식이다. 해밀턴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온도 대신 공간의 곡률을 시간에 따라 변화시키는 방정식을 생각했다. 공간에 계량을 하나 얹고, 그 계량을 시간에 따라 변형하되, 곡률이 드러나는 방식에 따라 공간의 울퉁불퉁함이 점차 조정되도록 한다. [계량(metric)은 공간의 각 점에서 거리를 어떻게 재는지 정하는 규칙이고, 계량이 정해지면 그로부터 곡률이 따라 나온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frac{\partial g_{ij}}{\partial t}=-2R_{ij} \] 등식의 좌변은 계량 \(g_{ij}\)가 시간 \(t\)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나타낸다. 우변의 \(R_{ij}\)는 리치 곡률을 나타내며, 이 방정식은 곡률 정보에 따라 계량이 시간에 따라 변하도록 한다는 뜻이다. 열이 온도의 울퉁불퉁함을 펴 나가듯, 리치 흐름은 공간의 곡률이 들쭉날쭉한 곳을 매끈하게 펴준다.
그러나 아름다운 구상에는 심각한 걸림돌이 있었다. 리치 흐름을 적용하다 보면, 공간의 어느 지점이 무한히 가늘게 늘어나거나 한 점으로 찌그러지면서 곡률을 잴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부른다. 특이점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곡률이 무한대가 되어 방정식을 의미 있게 다룰 수 없게 되고, 흐름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해밀턴은 이 특이점의 벽 앞에서 오래 고전했다. 흐름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벽을 넘어설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페렐만의 세 편의 논문
이 벽을 넘어설 방법을 찾아낸 사람이 러시아의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이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테클로프 연구소에서 조용히 연구하던 수학자로, 리치 흐름의 특이점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03년에 걸쳐, 인터넷 문서 저장소(arXiv)에 세 편의 논문을 조용히 올린다. [논문은 세 편으로 나뉘어 올라왔고, 분량은 놀랄 만큼 짧았다. 수십 년 묵은 난제를 푸는 증명치고는 지나치게 간결해서, 오히려 행간에 생략된 것이 많았다. 훗날 여러 수학자 팀이 이 증명의 세부사항을 수백 쪽에 걸쳐 채워 넣는 작업을 따로 해야 했다.]
해밀턴이 리치 흐름을 적용하기 위한 틀을 제시했다면, 페렐만은 이 틀을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특이점 분석의 핵심 난점을 해결했다. 그는 엔트로피 공식과 비국소붕괴 정리 등을 통해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통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였다. 이 기법을 자르고 붙이는 리치 흐름(Ricci flow with surgery)이라 부른다. 흐름을 진행하다 어느 지점이 잘록하게 좁아져 특이점이 생기려 하면, 그 부분이 끊어지기 직전에 잘록한 부분을 잘라내고 뚫린 자리를 매끈한 뚜껑으로 덮어 준다. 그런 다음 다시 흐름을 적용한다. 이렇게 잘라내고 이어가기를 반복하면, 특이점이라는 벽에 부딪혀 멈추지 않고 흐름을 끝까지 적용할 수 있다.
관건은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원래 공간과 무관한 엉뚱한 공간을 만들지 않도록, 수정된 부위를 표준적인 목과 뚜껑 모양으로 정밀하게 대체하고, 그때 생기는 위상적 변화가 어떤 종류인지 추적하는 데 있었다.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위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과정은 아니지만, 잘려 나가거나 사라지는 조각이 충분히 단순하고 분류 가능한 형태임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흐름이 진행된 뒤에도 원래 다양체의 위상에 대한 결론을 되돌려 얻을 수 있다. [잘려 나가는 조각은 늘 원기둥 모양(\(S^2\)에 선분을 곱한 목)이거나 그 끝에 붙은 둥근 뚜껑 형태임을 보였다. 이런 조각을 잘라내는 변환은 임의의 복잡한 위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분류 가능한 단순한 위상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푸앵카레 추측의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동반한 리치 흐름이 유한 시간 안에 사라지는 ‘유한 시간 소멸’ 현상을 보인다. 이 분석을 거꾸로 추적하면 원래 다양체가 \(S^3\)과 위상동형임을 결론낼 수 있다. [페렐만이 실제로 증명한 것은 푸앵카레 추측보다 훨씬 강력한 ‘기하화 추측(geometrization conjecture)’이었다. 이것은 윌리엄 서스턴이 제시한 것으로, 임의의 3차원 공간이 여덟 종류의 표준 기하 조각으로 분해된다는 주장이다. 푸앵카레 추측은 그 특수한 경우로 딸려 나온다.]
상을 거절한 사람
여러 수학자 팀의 검증을 거쳐 페렐만의 증명이 옳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학계는 페렐만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기려 하였다. 2006년, 페렐만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상을 받지 않았다. 수학사에서 필즈상을 거부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2000년,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새 천 년을 맞아 일곱 개의 난제를 밀레니엄 문제로 선정하고 각각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는데, 푸앵카레 추측이 그중 하나였다. 페렐만의 증명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으므로, 2010년 연구소는 그에게 100만 달러를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상금 역시 거절했다. [페렐만이 상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보도가 있다. 그중에는 자신의 공로가 해밀턴의 기여보다 특별히 더 크다고 보지 않았다는 설명도 있고, 수학계의 명예 체계와 거리를 두려 했다는 해석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가 2006년 필즈상과 2010년 밀레니엄 상금을 모두 거절했다는 점이다.] 이후 그는 수학계와 거리를 두고 은둔하며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기의 난제를 푼 사람이 명예와 거액을 마다하고 조용히 물러났다는 이야기는, 증명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 회자되었다.
여정을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는 공과 도넛을 구별하는 실 고리 이야기에서 출발해, 위상수학이 도형을 바라보는 방식, 푸앵카레가 남긴 질문의 의미, 높은 차원부터 차례로 증명된 사연, 그리고 리치 흐름과 페렐만의 증명을 통해 3차원에서의 추측이 증명되는 과정을 따라왔다. 100년 가까이 걸린 이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순수하게 위상수학의 물음으로 태어난 문제가 정작 위상수학의 도구만으로는 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하학과 해석학의 도구인 곡률과 흐름을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리만이 순수하게 수학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만든 휘어진 공간의 이론이 반세기 뒤 중력을 기술하는 언어가 되었다. 푸앵카레 추측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결을 볼 수 있다. 리만이 곡률을 다루기 위해 만든 기하학에서 리치 흐름이 탄생했고, 그 도구가 순전히 위상수학의 문제로 보이던 난제를 풀어내는 데에 사용되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보이던 수학의 갈래들이 실은 한자리에서 만난 셈이다.
참고문헌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문헌을 모았다. 페렐만의 논문은 워낙 간결해서 곧바로 읽기가 어려우므로, 해설서를 먼저 익힌 뒤 논문을 읽는 편이 수월하다.
먼저 증명의 뼈대를 이루는 논문들이다. 페렐만은 학술지에 정식으로 투고하는 대신 arXiv에 세 편을 올렸다.
- Perelman, G. (2002). “The entropy formula for the Ricci flow and its geometric applications.” arXiv:math/0211159. — 리치 흐름에 엔트로피와 비국소붕괴 정리를 도입해 증명 전체의 해석적 토대를 놓은 첫 번째 논문이다.
- Perelman, G. (2003). “Ricci flow with surgery on three-manifolds.” arXiv:math/0303109. — 특이점이 생기는 자리를 도려내고 흐름을 이어 가는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정밀하게 구성한 두 번째 논문이다.
- Perelman, G. (2003). “Finite extinction time for the solutions to the Ricci flow on certain three-manifolds.” arXiv:math/0307245. — 단순연결인 경우 흐름이 유한 시간 안에 소멸함을 보여, 푸앵카레 추측만 놓고 보면 증명을 한결 짧게 만든 세 번째 논문이다.
- Hamilton, R. S. (1982). “Three-manifolds with positive Ricci curvature.” Journal of Differential Geometry, 17(2), 255–306. — 리치 흐름을 처음 제시하고 그 위력을 보인 논문이다. 페렐만의 증명이 딛고 선 출발점이다.
- Smale, S. (1961). “Generalized Poincaré’s conjecture in dimensions greater than four.” Annals of Mathematics, 74(2), 391–406. — 5차원 이상에서 일반화된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해, 높은 차원을 먼저 증명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 Freedman, M. H. (1982). “The topology of four-dimensional manifolds.” Journal of Differential Geometry, 17(3), 357–453. — 위상수학적 4차원 푸앵카레 추측을 포함해 4차원 위상다양체 이론의 큰 진전을 이룬 논문이다. 이로써 남은 것은 3차원뿐이었다.
다음은 페렐만의 간결한 논문에서 생략된 세부사항을 수백 쪽에 걸쳐 채워 넣은 해설서이다. 페렐만의 논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읽으면 좋다.
- Kleiner, B., & Lott, J. (2008). “Notes on Perelman’s papers.” Geometry & Topology, 12(5), 2587–2855. — 페렐만의 첫 두 논문을 절 번호까지 따라가며 빠진 논증을 메운, 가장 널리 참조되는 검증 노트다.
- Morgan, J., & Tian, G. (2007). 『Ricci Flow and the Poincaré Conjecture』. Clay Mathematics Monographs, Vol. 3.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 세 편의 논문을 따라 완전한 증명을 한 권으로 엮은 표준 참고서. 리만 기하학과 리치 흐름의 배경까지 갖추고 있어 대학원생부터 읽을 수 있다.
수리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음 대중서를 권한다. 수식보다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 O’Shea, D. (2007). 『The Poincaré Conjecture: In Search of the Shape of the Universe』. Walker & Company. — 유클리드와 리만에서 시작해 해밀턴과 페렐만까지, 위상수학과 기하학의 흐름을 우주의 모양이라는 큰 줄기로 엮어 설명한 해설서다.
- Gessen, M. (2009). 『Perfect Rigor: A Genius and the Mathematical Breakthrough of the Century』. Houghton Mifflin Harcourt. — 페렐만을 직접 인터뷰하지 못한 채로, 그를 둘러싼 소련 수학계와 은둔의 사연을 촘촘히 재구성한 평전이다. 수학 내용은 한 장에 집중해 다룬다.
위 대중서 중 오셔의 책과 게센의 책의 번역본이 있다.
- 도널 오셔 (지음), 전대호 (옮김). 『푸앵카레의 추측』. 까치, 2007. (원서: Donal O’Shea, The Poincaré Conjecture, 2007.) — 위 O’Shea (2007)를 옮긴 책이다. 부제 그대로 ‘우주의 모양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으로, 본문에서 다룬 비유클리드 기하학부터 리치 흐름까지의 이야기를 한층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마샤 게센 지음, 전대호 옮김. 『세상이 가둔 천재 페렐만』. 세종서적, 2011. 원서: Masha Gessen, Perfect Rigor: A Genius and the Mathematical Breakthrough of the Centur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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