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닿은 등 제2부 — 호흡이 내려가는 자리
겨울이 깊어지면서 극단은 도시의 낡은 회관 하나를 빌려 머물게 되었다. 한때 시청으로 쓰던 건물이었다. 천장이 높고 창이 길쭉했으며, 바닥은 오래된 참나무였다. 누군가 그 바닥을 거칠게 사포로 문지른 자국이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고, 아냐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냐가 그 회관에 처음 들어간 것은 우연이었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약초 한 묶음을 회관 옆 약방에 가져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회관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음악은 피아노 한 대뿐이었다. 다른 악기는 없었고, 누가 치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짧은 선율이 반복되었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그사이로 누군가의 가벼운 발소리가 끼어들었다. 발소리라기보다, 무언가가 바닥에 닿았다 떠나는 소리. 닿는 시간이 너무 짧아 닿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소리였다.
아냐는 문 앞에 서서 한참 그 소리를 들었다. 안을 들여다봐도 될지 망설였지만,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문틈에 한쪽 눈을 대 보았을 때, 시장에서 보았던 그 여자가 거기 있었다.
여자는 회관 한가운데에 있었다. 옅은 색 연습복을 입고, 머리는 단단하게 위로 묶어 올렸다. 검은 외투 속에 가려져 있던 등이 드러나 있었다. 등은 길었다. 아주 길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이어지는 선이 사람의 몸이 아니라 도구 같았다. 오래 쓰여 닳고 또 닳은 도구.
여자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한 발을 들어 올렸다 천천히 내리고, 몸을 살짝 비틀고, 팔을 부드럽게 펼친 다음 처음 자세로 돌아오는 짧은 움직임이었다. 동작이 끝날 때마다 여자는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고,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무언가를 세는 것 같았다.
아냐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붙들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여자의 동작에는 슬픈 데가 있었다.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정확함이었다. 같은 동작을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는지, 아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여자가 멈췄다. 아냐가 들킨 줄 알고 뒷걸음치려는 순간, 여자는 회관 한쪽 벽으로 걸어가 거기 놓인 천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의자에 앉아 한참 들여다보았다.
분홍색 신발이었다.
아냐는 숨을 멈췄다. 어머니의 신발과 똑같았다. 똑같지는 않았다. 색이 조금 더 진했고, 리본 매듭이 다른 방향이었고, 천의 결도 달라 보였다. 그러나 같은 종류의 신발이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신발. 같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신발.
여자는 그 신발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단단해질 때까지, 다시 부드러워질 때까지. 여자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손길에는 다정한 데가 있었다. 오래된 친구를 만지는 것 같기도 했고, 제 일부를 어루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아냐는 회관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저녁을 차렸다. 평소처럼 감자 수프와 검은 빵이 식탁에 올랐지만, 아냐는 거의 먹지 못했다. 할머니는 무언가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묻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묻는 사람.
다음 날 아냐는 다시 회관으로 갔다. 이번에는 약초도 핑계도 없었다. 그저 가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갔다. 회관 문은 어제처럼 살짝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같은 피아노 선율이 들려왔다. 그러나 들여다보기 전에, 누군가 뒤에서 말했다.
들어와요. 문밖에 서 있으면 추워요.
아냐가 돌아보자 그 여자가 거기 있었다. 외투를 입고, 손에는 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약방에서 무언가를 사서 돌아오는 길인 듯했다. 가까이서 본 여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젊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비슷한 나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눈가에 깊은 그늘이 있었다. 그 그늘이 여자를 실제 나이보다 멀리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여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냐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회관 안으로 들어갔고, 여자는 종이 봉투를 의자에 내려놓은 다음 천천히 외투를 벗었다. 그러고는 아냐에게 말했다. 거기 앉아 있어도 돼요. 다만 소리는 내지 말아요.
아냐는 회관 한쪽 구석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차가웠고, 등받이가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두 손을 무릎에 모으고, 여자가 다시 같은 동작을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날 아냐는 두 시간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자는 한 번도 아냐를 쳐다보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고, 가끔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고, 다시 시작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여자는 동작을 멈추고 아냐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고, 호흡은 가빴지만 얼굴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여자가 아냐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고 있었어요.
아냐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여자는 잠시 기다렸다가, 아냐가 대답하지 않자 더 묻지 않았다. 가방에서 작은 사과 하나를 꺼내 아냐에게 건넸다. 손에 닿은 사과는 따뜻했다. 외투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가요. 어두워지고 있어요.
아냐는 사과를 쥐고 회관을 나왔다. 거리에는 이미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사과는 손바닥 안에서 천천히 식어 갔지만, 아냐는 집에 닿을 때까지 먹지 않았다. 먹어 버리면 그 따뜻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겨울 동안 아냐는 거의 매일 회관으로 갔다. 할머니는 처음엔 아냐의 외출을 의아해했지만, 돌아올 때마다 아냐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을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변화를 알아채면서도 건드리지 않는 사람.
여자는 늘 같은 시간에 회관에 있었다.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 그 두 시간 동안 여자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고, 아냐는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동작이 끝나면 여자가 외투를 입으며 한두 마디 건넬 때가 있었다. 오늘은 바람이 차요. 약방에 새 차가 들어왔어요. 어제 강에 얼음이 더 두꺼워졌어요. 그런 말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여자가 평소보다 일찍 동작을 멈췄다. 의자에 앉아 한참 자신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발에서 가는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발톱 옆 살이 갈라진 것 같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작은 천을 꺼내 그 자리를 눌렀고, 한참 그렇게 있었다.
아냐는 처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여자의 발 옆에 앉았다. 여자는 아냐를 막지 않았다. 아냐가 가방에서 깨끗한 천을 꺼내 건넸고, 여자는 그것을 받아 상처 위에 다시 둘렀다.
그때 여자가 말했다. 내 어머니도 이런 신발을 신었어요. 더 오래, 더 많이. 어머니 발은 끝내 더는 신발을 신을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지요. 그때 나는 열 살이었어요. 어머니는 그 뒤로 다시는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어요.
아냐는 무릎을 꿇은 채 그 말을 들었다. 회관 천장은 높았고, 바깥의 눈이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아냐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신발을 다시 꺼냈다. 비단 천을 풀고, 분홍색 새틴 위에 손을 천천히 올려놓았다. 신발 안쪽에 어머니의 발 모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뎠는지, 아냐는 처음으로 조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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