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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의 방

by Ariel Da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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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더는 제 무게를 짊어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먼 미래.

사람들은 흰 고리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살았다. 고리는 어느 푸른 행성의 궤도를 천천히 돌았다. 그 안에서 중력은 옷 같은 것이었다. 입고 싶으면 입고, 벗고 싶으면 벗었다. 잠은 무게 없는 구역에서 잤다. 떠서 자는 잠은 어디도 배기지 않아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구겨진 데 없는 몸으로 깨어났다. 식사는 절반의 무게에서 했다. 그릇이 가볍고 국물이 둥글게 출렁였다. 아이들은 천장을 차고 날며 자랐고, 노인들은 떨어질 걱정 없이 늙었다. 좋은 세계였다. 정말로 좋은 세계였다.

춤도 가벼워졌다. 공중에서 몸을 푸는 춤,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풀리는 춤, 손끝 하나로 시작한 회전을 며칠씩 이어 가는 춤. 아름다웠다. 다만 그 춤에는 떨어질 자리가 없었다. 아무도 넘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고리의 가장 낡은 구역, 배관이 겉으로 드러난 복도 끝에 방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방을 무게의 방이라고 불렀다. 그 방에서만은 옛 행성의 중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법이 지킨 것도, 기계가 지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떤 사람들이 손에서 손으로, 대를 이어 지켜 온 방이었다. 마룻바닥에는 나뭇결이 살아 있었다. 한쪽 벽은 전부 거울이었고, 그 맞은편 벽을 따라 나무 가로대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로대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손바닥이 쥐었다 놓은 자리만 빛이 달랐다.

세오는 고리에서 태어났다. 뼈가 길고 가볍게 자랐다. 세오의 어머니는 고리 사람이 아니었다. 풀이 지평선 끝까지 자라는 행성에서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세오가 어릴 때 그 행성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모음이 길고 바람 소리가 섞인 노래였다. 어머니는 세오가 그 노래를 다 외우기 전에 제 행성으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반쪽짜리 가사와, 바람이 풀을 길게 누이는 소리를 닮은 후렴이었다. 세오는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잊지도 않았다.

세오가 무게의 방을 처음 본 것은 열두 살 무렵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 복도 끝 문틈으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누르는 소리. 숨소리. 가벼운 세계에는 없는 소리들이었다. 문틈에 눈을 대니 한 여자가 혼자 있었다. 가로대에 한 손을 얹은 채 다른 팔을 아주 천천히 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들어 올린 팔이 가늘게 떨렸다. 세오는 그 떨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벼운 세계의 춤에는 떨림이 없었다. 떨 이유가 없으니까.

여자가 돌아보았다. 들어오려면 신을 벗고 들어오라고 했다. 낮고 마른 목소리였다.

경계를 넘는 순간 어깨에 무언가 얹혔다. 세오는 그것이 제 몸의 무게라는 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았다. 무릎이 출렁했다. 숨의 무게가 느껴졌다.

여자의 이름은 려였다. 려는 머리를 낮게 묶었다. 묶고 남은 잔머리 몇 가닥이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손이 찼고 손가락이 길었다. 가까이 서면 송진 가루와 찬 비누 냄새가 났다. 세오는 처음 본 날부터 그 손을 오래 보았다. 가로대를 쥘 때 손등에 서는 힘줄, 매듭을 누르는 엄지의 모양 같은 것들을. 왜 자꾸 보게 되는지는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 쪽이 편했다.

배움은 느리고 지난했다. 발꿈치를 모으고 발끝을 바깥으로 여는 자세. 무릎을 굽혔다 펴는 일. 같은 동작을 백 번, 이백 번. 가로대를 쥔 손에 물집이 잡혔다가 굳은살이 되었다. 가벼운 구역의 친구들은 의아해했다. 왜 굳이 무거운 데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세오는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 방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만 알았다. 가벼운 데서는 누구나 떠오를 수 있지만, 무게 속에서는 연습한 만큼만 설 수 있었다.

어느 해에 려가 세오에게 신 한 켤레를 내밀었다. 앞코가 단단하고 발목에 리본을 감게 되어 있는, 옛 행성의 신이었다. 새 신은 길을 들여야 했다. 앞코를 문틈에 끼워 부드럽게 하고, 리본은 제 손으로 한 땀씩 꿰매 달았다. 바늘이 새틴을 통과할 때 나는 작은 소리가 좋아서, 세오는 그 일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 신을 신고 발끝으로 서는 법을 배울 것이라고 려가 말했다. 세오가 물었다. 그건 중력을 이기는 일이냐고. 려는 고개를 저었다. 약속하는 거라고 했다. 이기는 게 아니라. 네가 정직하게 누르는 만큼만 바닥이 너를 받친다고. 무게가 없으면 도약도 없다고. 떨어질 자리가 없는 곳에서는 일어서는 일도 없다고.

발톱이 죽었다가 다시 자랐다. 발목에는 리본 자국이 남았다. 그래도 어느 날,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한 줄이 되는 순간이 왔다. 아주 짧게. 바닥이 세오를 밀어 올리는 것인지 세오가 바닥을 누르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한순간이었다. 그 한순간을 위해 지내온 일 년이 아깝지 않았다.

려가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발등을 바로잡아 주는 시간이 있었다. 세오는, 리본을 일부러 조금 느슨하게 매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려의 손이 매듭을 다시 누르는 동안 거울 속 제 얼굴이 붉어지지 않게 숨을 고르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스스로 인정했다.

무게의 방에는 규칙이 하나 있었다. 이 방의 춤은 기록하지 않는다. 카메라도, 보존막도, 기억 결정도 없다. 한 번 춘 춤은 그 자리에서 끝난다. 세오는 그게 아까웠다. 그렇게 다 사라지면 없었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려는 가로대에 손을 얹은 채 한참 있다가 말했다. 사라지는 것과 없었던 것은 다르다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라고. 마음을 다해 누군가의 앞에서 움직인 시간은 그 시간 안에서 이미 완성되는 것이라서, 남길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남길 수가 없는 거라고. 남기려고 추는 춤은 남기는 일을 하느라 정작 추는 일을 못 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그냥 추는 거라고. 세오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가슴에 남겨두었다.

이 방에 전해 오는 춤 가운데 물새의 독무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옛 행성에서 만들어진 춤이라고 했다. 두 팔이 날개가 된다. 끝에는 날개를 접으며 바닥에 내려앉는다. 죽음을 추는 춤인데 슬프기보다 고요하다고 했다. 이 춤은 영상이 아니라 몸으로만 전해졌다. 려가 추고, 세오가 보고, 따라 추고, 틀리고, 고쳐졌다. 몸에서 몸으로 건너가는 것. 그것이 이 방의 유일한 기록이었다.

일 년에 한 번, 방의 문을 열었다. 가벼운 세계의 사람들이 많아야 스무 명쯤 신을 벗고 들어왔다. 이 방에서는 보는 일에도 무게가 들었다. 관객들은 한 시간을 제 무게로 앉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오는 사람은 적었지만 본 사람은 잊지 않았다.

스물몇 살의 어느 해, 세오가 처음으로 물새를 췄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음악이 낮게 깔렸다. 팔을 들 때, 반쪽만 아는 노래의 긴 모음들이 어디선가 떠올랐다. 바람이 풀을 길게 누이는 소리. 세오는 그 소리에 팔을 맡겼다. 마지막에 날개를 접고 바닥에 내려앉았을 때, 박수보다 먼저 누군가 숨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끝나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영상도, 사진도. 다만 맨 앞에 앉았던 아이 하나가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충분하다는 말의 뜻을 세오는 그날 처음 몸으로 알았다.

세월은 무게의 방에서 더 정직하게 흘렀다. 려는 어느 해부터 발끝으로 서지 않았다. 늙는 것도 무게의 일이라서, 이 방에서는 늙는 일조차 거짓이 없었다. 마지막 날 려는 가로대를 잡고 다섯 가지 자세를 천천히, 순서대로 밟았다. 그러고는 한 번도 잠근 적 없는 문의 낡은 열쇠를 세오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손이 찼다. 처음 만난 날과 같은 온도였다. 려가 더는 방에 오지 않게 된 뒤에도 송진 냄새는 오래 남아 있었다.

세오가 려의 자리에 선 지 한참 지난 어느 날, 문틈으로 아이 하나가 들여다보았다. 가볍게 자란, 뼈가 긴 아이였다. 세오는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들어오려면 신을 벗고 들어오라고. 아이의 이름은 로아였다. 로아의 발목에 리본을 매 주다가 세오는 제 손이 차가워진 것을 알았다. 언제부터 이 온도였을까. 손이 차서 미안하다고 하자 로아는 고개를 저었다. 시원하다고 했다. 세오는 웃었다. 거울 속에서 아주 잠깐, 낮게 머리를 묶은 다른 여자가 겹쳐 보였다가 사라졌다.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그 미래에도 우주는 넓고, 대체로 가볍다. 그러나 어느 흰 고리의 낡은 복도 끝, 한 방에서는 지금도 사람이 제 무게를 전부 받아들이고 발끝으로 선다. 한 번뿐인 동작으로 춘 춤, 동작은 사라지지만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누르는 소리, 숨소리, 그리고 이따금, 바람이 풀을 누이는 것 같은 낮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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