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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이야기

by Ariel Da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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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지금보다 낮았던 시절이 있었어. 손이 닿을 정도는 아니지만, 새가 너무 높이 날면 부딪힐 만큼은 낮았대. 그때는 바람마다 다 다른 이름이 있었어. 봄에 풀을 한 번 휘젓고 가는 바람, 한여름 정오에 그늘 속까지 들어오는 바람, 누군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을 헝클어 주는 바람까지. 그 이름을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은 풀밭 가운데 혼자 사는 노인뿐이었어.

노인의 집에 두 아이가 자랐어. 자매는 아니었대. 하나는 강가에서 주워 온 아이였고, 하나는 어느 겨울날 양 떼 틈에 섞여 있던 아이였어. 어느 쪽이 먼저 왔는지는 노인도 잊었다고 해. 그래서 둘은 같은 그릇으로 죽을 먹고, 같은 모포를 덮고 잤어.

큰 쪽 아이는 손이 차가웠어. 한여름에도. 작은 쪽 아이는 손이 따뜻했어. 한겨울에도. 둘이 손을 잡으면 서로의 온도가 만나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미지근한 자리가 생겼다고 해. 노인은 그 미지근한 자리를 좋아했어. 두 아이가 손을 잡고 잠들면, 그 위를 자기 손바닥으로 한참 덮고 있곤 했어.

아이들이 좀 자라자 노인은 둘을 풀밭으로 내보내기 시작했어. 양을 돌보라고. 풀밭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어. 여기서 봐도 풀, 저기서 봐도 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풀밖에 안 보였어. 그런데도 두 아이는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어. 큰 아이는 돌이 하는 말을 들을 줄 알았고, 작은 아이는 바람의 이름을 하나씩 익혀 가고 있었거든.

큰 아이가 발치의 돌에게 묻고, 그 돌이 멀리 있는 다른 돌에게 묻고, 그 돌이 또 멀리 있는 돌에게 물어서, 우리 집이 어느 방향이냐, 하는 답이 천천히 풀밭을 거쳐 돌아왔대. 작은 아이는 그동안 풀을 누이고 지나가는 바람을 손바닥으로 잡아 어느 쪽에서 왔는지 알아냈고. 둘은 그렇게 해질 무렵이면 늘 노인의 굴뚝 연기를 향해 걸어왔어.

그렇게 몇 해가 지났어. 큰 아이는 키가 노인의 어깨까지 왔고, 작은 아이는 노인의 허리쯤까지 왔어. 큰 아이는 말수가 줄었어. 돌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대. 돌은 천천히 말해. 한마디를 시작해서 끝맺기까지 한나절이 걸리기도 해. 그걸 듣다 보면 사람의 말이 너무 빠르고 가벼워서 입을 떼기가 귀찮아진다고, 큰 아이가 언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어. 작은 아이는 반대로 말이 많아졌어. 바람의 이름을 외울 때마다 그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같이 외워야 했거든. 그래서 작은 아이의 머릿속에는 가본 적 없는 곳의 이름이 가득했어. 강 이름, 산 이름, 사람 사는 마을 이름. 누가 묻지 않아도 작은 아이는 그 이름들을 큰 아이에게 들려주곤 했어. 큰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작은 아이가 말을 멈추면 슬쩍 다음 이름을 묻곤 했지.

어느 해 가을, 노인이 앓아누웠어. 아주 늙은 사람이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 풀밭 가운데 사는 사람은 늙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늙어. 그리고 그때부터는 빠르게 가. 노인도 그랬어. 며칠 사이에 얼굴이 종이처럼 얇아졌고, 손등의 핏줄이 푸르게 도드라졌어. 두 아이는 번갈아 가며 노인 곁을 지켰어. 큰 아이는 노인의 발치에 앉아 발을 주물렀고, 작은 아이는 머리맡에서 물을 떠다 입술을 적셨어.

노인이 마지막으로 입을 연 건 새벽이었어. 바깥에서 첫 바람이 부는 시각. 노인은 작은 아이를 가까이 부르더니, 바람의 이름 중에 아직 안 가르쳐 준 게 하나 있다고 했어. 그게 뭐냐고 묻자, 노인은 웃었어. 너희 둘 사이에 부는 바람의 이름. 그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너희가 같이 살면서 천천히 알아 가는 거라고 했어. 그리고 큰 아이를 불러서는, 돌의 말을 다 듣지는 말라고 했대. 다 들으려고 하면 사람의 시간을 살 수가 없다고. 가끔은 귀를 닫고 풀이나 보라고. 풀은 빨리 자라고 빨리 마르니까, 그게 사람의 속도에 더 가깝다고. 그러고 노인은 눈을 감았어. 그게 다였어.

두 아이는 노인을 풀밭에 묻었어. 어느 방향이라고 정하기 어려운, 그냥 집에서 적당히 떨어진 자리에. 큰 아이가 돌 하나를 골라서 머리맡에 세웠어. 작은 아이는 그 돌 위에 손을 얹고 한참을 서 있었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 큰 아이도 그때만큼은 돌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거든.

그 뒤로 두 아이는 둘이서만 살았어. 양은 여전히 풀을 뜯었고, 굴뚝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났어. 달라진 건 별로 없어 보였어. 그런데 사실은 다 달라져 있었어. 노인이 있을 때는 두 아이가 같은 모포를 덮고 자도 그게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자는 거였는데, 이제는 그게 다른 의미가 되어 있었어. 누구도 그걸 말하지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어. 큰 아이가 먼저 자기 모포를 따로 펴기 시작했어. 작은 아이는 잠시 그걸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에 누웠어. 그날 밤 작은 아이의 머리맡으로 바람 하나가 지나갔는데, 작은 아이는 처음으로 그 바람의 이름을 알 수 없었어. 노인이 말한 게 이거구나, 하고 천장을 보면서 생각했대.

겨울이 왔어. 풀밭의 겨울은 길어. 눈이 한번 오면 다음 눈이 올 때까지 안 녹아. 그래서 풀밭은 점점 두꺼워져. 첫눈은 풀 위에 얹히고, 그 위에 다음 눈이 얹히고, 또 그 위에 다음 눈이 얹혀. 봄이 올 때쯤에는 사람 무릎까지 차오르는 곳도 있었어.

그 겨울에 멀리서 손님이 왔어. 풀밭 가운데 사는 두 아이의 집에 손님이 오는 건 드문 일이었어. 노인이 살아 있을 때도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였거든. 손님은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이었어. 등에 짐을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어두웠고, 눈만 유난히 밝았어. 자기는 멀리서 왔다고 했어. 어느 마을의 이름을 댔는데, 작은 아이가 외운 이름 중에 있는 마을이었어. 작은 아이는 반가워하며 그 마을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큰 아이가 먼저 손님에게 자리를 권했어.

손님은 며칠을 묵었어. 처음에는 하룻밤만 신세 지겠다고 했는데, 눈보라가 다시 와서 발이 묶였어. 손님은 부지런한 사람이었어. 묵는 동안 가만히 있지 않았어. 장작을 패고, 양 우리를 손보고, 부서진 빗장을 고쳤어. 두 아이가 그동안 미뤄 두었던 일들을 손님이 하나씩 해치웠어. 큰 아이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어딘가 마음에 걸렸어. 자기들이 못 했던 일이 아니라 안 했던 일이거든. 그걸 손님이 너무 자연스럽게 해 버리니까, 풀밭의 시간이 손님의 시간으로 바뀌는 것 같았어. 빠르고, 효율적이고, 마무리가 깔끔한 시간으로.

작은 아이는 손님을 좋아했어. 손님이 자기가 외운 이름들의 실제 모습을 들려줬거든. 강은 이렇게 흐르고, 산은 저쪽 면이 더 가파르고, 그 마을에서는 가을마다 어떤 축제를 한다고. 작은 아이는 듣다 보면 자기가 그곳에 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손님은 떠날 때 작은 아이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어. 같이 가지 않겠냐고. 자기는 곧 더 먼 데로 갈 건데, 길동무가 있으면 좋겠다고. 너처럼 이름을 많이 외운 아이라면 길에서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어. 작은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어. 그 대신 큰 아이를 봤어.

큰 아이는 부엌에서 등을 돌리고 무언가를 썰고 있었어. 손님의 말을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돌아보지 않았어. 어깨가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 있다는 걸 작은 아이만 알아봤어. 손님이 다시 한 번 물었어. 작은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어. 안 갈래요. 손님은 더 권하지 않았어. 그런 거 권하면 안 되는 거 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날 새벽에 떠났어. 떠나는 길에 손님은 작은 아이에게 작은 주머니를 하나 줬어. 안에 뭐가 들었냐고 묻자, 손님이 웃으며 말했어. 네가 외운 이름 중에 가장 먼 이름의 흙. 언젠가 가게 되면 돌려주든지 안 가도 그냥 가지고 있든지.

손님이 떠난 뒤, 두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어. 큰 아이는 부엌일을 더 많이 했고, 작은 아이는 양을 더 멀리까지 끌고 나갔어. 둘이 한 집에 사는 건 똑같은데, 마주치는 시간이 줄었어. 어느 날 저녁, 큰 아이가 처음으로 먼저 물었어. 가고 싶었어. 그 묻는 말투에 물음표가 없었어. 작은 아이는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어. 가고 싶었어. 그런데 안 가고 싶기도 했어. 큰 아이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 그러다가 말했어. 다음에 누가 또 권하면, 그때는 가도 돼. 작은 아이는 고개를 들었어. 큰 아이의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웠어. 작은 아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뒀어. 그날 밤, 작은 아이는 자기 모포를 큰 아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펴고 누웠어. 큰 아이는 그걸 알아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봄이 왔어. 풀밭의 봄은 한꺼번에 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다 녹아 있고, 그 자리에 풀의 끝이 뾰족하게 올라와 있어. 풀밭 가운데 사는 사람은 봄이 오는 걸 못 봐. 자고 일어나면 이미 와 있어. 두 아이는 그 봄에 처음으로 양털을 같이 깎았어. 노인이 살아 있을 때는 노인이 깎았거든. 두 아이는 그저 양을 붙들고 있는 역할이었어. 이제는 깎는 사람도 잡는 사람도 다 자기들이어야 했어.

큰 아이가 가위를 쥐었어. 손이 차가워서 가위 손잡이가 차게 식었는데, 그래도 손이 떨리지 않았어. 작은 아이는 양을 무릎 사이에 끼우고 가만히 누르고 있었어. 양은 처음에 발버둥을 쳤지만, 작은 아이의 손이 따뜻해서 그런지 곧 잠잠해졌어. 큰 아이가 가위질을 한 번 할 때마다 한 줌씩 양털이 떨어졌어. 풀 위에 떨어진 양털은 풀과 색이 비슷해서 잘 안 보였어. 두 아이는 한 마리를 다 깎고 나서야 허리를 폈어. 큰 아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어. 작은 아이가 손을 뻗어 그걸 닦아 줬어. 큰 아이는 잠깐 그 손을 자기 이마에 댄 채로 가만히 있었어. 작은 아이도 손을 빼지 않았어. 둘 사이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어. 작은 아이는 그 바람의 이름을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

그해 여름, 풀밭에 비가 자주 왔어. 풀이 너무 빨리 자라서 양들이 다 못 먹을 정도였어. 큰 아이가 낫을 들고 풀을 베기 시작했어. 베어 낸 풀은 말려서 겨울 양식으로 쟀어. 작은 아이는 큰 아이가 벤 풀을 모아 한쪽에 쌓는 일을 했어. 둘은 하루 종일 풀밭에 나와 있었어. 큰 아이의 등에는 땀이 배었고, 작은 아이의 팔에는 풀잎이 베인 작은 상처가 늘었어.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팔에 풀물을 발라 줬어. 풀 자체로 풀잎에 베인 상처를 낫게 한다는 건 노인이 가르쳐 준 거였어. 큰 아이의 차가운 손이 작은 아이의 팔에 닿을 때마다, 작은 아이는 어쩐지 숨을 잠깐씩 멈췄어. 큰 아이는 그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어. 모르는 척하는 게 그때 큰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어.

가을이 왔어. 그해 가을은 짧았어. 풀이 미처 노래지기도 전에 첫 서리가 내렸어. 양들이 빨리 통통해졌고, 늑대 울음소리가 가까워졌어. 두 아이는 양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었어. 큰 아이가 밤마다 일어나서 밖을 살폈어. 작은 아이는 큰 아이가 일어날 때마다 같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큰 아이가 됐다고, 자라고 했어. 작은 아이는 잠든 척하고 누워서 큰 아이가 나갔다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어. 큰 아이가 들어와서 모포 자락을 끌어 덮을 때마다, 작은 아이는 한 번 더 자는 척을 했어.

어느 밤, 늑대가 양 우리까지 왔어. 큰 아이가 막대기를 들고 나갔어. 작은 아이도 따라 나갔어. 큰 아이가 들어가 있으라고 했지만, 작은 아이는 안 들어갔어. 둘이 같이 막대기를 휘둘렀고, 양들은 우리 안에서 울었고, 늑대는 결국 도망갔어. 그런데 도망가기 전에 늑대가 큰 아이의 다리를 한 번 물었어. 깊지는 않았는데, 피가 났어. 작은 아이가 큰 아이를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왔어. 등불 아래서 보니까 큰 아이의 종아리에 이빨 자국이 두 개 나 있었어. 작은 아이가 떨리는 손으로 천을 찢어 묶었어. 큰 아이는 아프다는 말을 안 했어. 작은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었어. 작은 아이의 손은 평소보다 더 떨렸어. 큰 아이가 그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어. 차가운 손이었어. 작은 아이의 손이 그제야 좀 멎었어.

상처는 며칠 만에 아물었어. 큰 아이는 며칠 동안 다리를 절었어. 그동안 작은 아이가 큰 아이의 일까지 다 했어. 양을 풀밭에 끌고 나가고, 다시 끌고 들어오고, 물을 길어 오고, 불을 피우고. 작은 아이는 그 며칠 동안 한 뼘쯤 더 자란 것 같았어. 큰 아이가 그걸 봤어. 작은 아이가 양동이를 양손에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큰 아이는 문턱에 앉아서 보고 있었어. 작은 아이가 어느새 키가 커서, 양동이가 땅에 끌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어. 큰 아이는 그게 좀 슬펐어. 자기가 알던 작은 아이는 양동이를 끌고 다니던 아이였거든. 그게 왜 슬픈지는 큰 아이도 잘 몰랐어. 큰 아이는 돌의 말은 알아들으면서 자기 마음은 잘 못 알아들었어.

겨울이 또 왔어. 이번 겨울에는 손님이 안 왔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풀밭 가운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 두 아이는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어. 큰 아이는 모포를 짰어. 작은 아이는 짠 모포에 양털을 채워 넣었어. 둘은 마주 앉아서 일했어. 말은 별로 안 했어. 가끔 큰 아이가 손을 멈추고 작은 아이를 봤어. 작은 아이가 고개를 들면 큰 아이는 다시 손을 움직였어. 작은 아이가 고개를 안 들면 큰 아이는 좀 더 오래 봤어.

어느 밤, 등불이 꺼졌어. 기름이 다 떨어진 거였어. 두 아이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어. 창밖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방을 반으로 갈랐어. 큰 아이의 자리는 빛 쪽이었고, 작은 아이의 자리는 어둠 쪽이었어. 작은 아이가 자리를 옮겼어. 빛 쪽으로. 큰 아이 옆으로. 큰 아이가 자리를 비켜 줬어. 둘이 나란히 앉아서 달빛을 받고 있었어. 작은 아이가 말했어. 노인이 말한 바람의 이름, 알 것 같아. 큰 아이가 물었어. 뭔데. 작은 아이가 대답했어. 이름이 없는 바람. 큰 아이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웃었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작은 아이가 말했어. 있어. 노인이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한 게 그거잖아. 이름이 없는 거. 큰 아이는 더 말하지 않았어. 다만 작은 아이 쪽으로 어깨를 좀 기울였어. 작은 아이가 그 어깨에 자기 머리를 댔어. 큰 아이의 어깨는 차가웠는데, 닿아 있으니까 따뜻해졌어. 두 아이 사이로 바람이 또 지나갔어. 이번에도 이름이 없었어. 작은 아이는 이제 그게 자연스러웠어.

봄이 다시 왔어. 양털을 또 깎았어. 이번에는 작은 아이가 가위를 쥐었어. 큰 아이가 양을 잡았어. 가위는 처음 잡아 봤는데 작은 아이는 잘 했어. 큰 아이가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잘 했어. 큰 아이는 그걸 보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자기가 가르쳐 주지 않은 걸 작은 아이가 알고 있다는 게. 노인이 살아 있을 때는 모든 게 노인이 가르쳐 준 것이었는데, 이제는 두 아이가 서로한테 안 배운 것도 알고 있었어. 그게 둘이 자라고 있다는 뜻이라고, 큰 아이는 천천히 생각했어.

여름에 손님이 또 왔어. 이번에는 다른 손님이었어. 여자 둘이었어. 둘 다 키가 작고 단단해 보였어. 자매라고 했어. 어느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했어. 작은 아이가 외운 이름 중에 둘 다 있는 이름이었어. 자매는 하룻밤만 묵었어. 떠나기 전에 자매 중 한 명이 두 아이에게 물었어. 너희도 자매니. 큰 아이가 잠깐 대답을 망설였어. 작은 아이가 먼저 대답했어. 비슷한 거예요. 자매 중 다른 한 명이 웃었어. 비슷한 거라는 게 뭐야. 작은 아이가 대답했어. 자매보다 가까운 거. 큰 아이는 가위질을 하다가 손을 멈췄어. 자매들은 더 묻지 않았어. 다음 날 아침에 떠났어.

자매가 떠난 뒤,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물었어. 아까 한 말. 작은 아이가 말했어. 응. 큰 아이가 말했어. 그렇게 말해도 돼. 작은 아이가 말했어. 응. 그게 그날의 대화 전부였어. 그런데 그날 이후로 큰 아이가 모포를 따로 펴지 않았어. 노인이 죽은 뒤로 처음이었어. 작은 아이는 그걸 알아챘지만, 알아챘다는 티를 내지 않았어. 큰 아이도 작은 아이가 알아챘다는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했어. 모르는 척하는 건 둘이 같이 잘하는 일 중 하나가 되어 있었어.

가을이 왔어. 그 가을에 노인의 무덤가에 풀이 유난히 길게 자랐어. 두 아이가 같이 가서 풀을 베어 줬어. 큰 아이가 베고, 작은 아이가 모았어. 큰 아이가 베다가 손을 멈추고 무덤가 돌에 손을 댔어. 한참을 댄 채로 있었어. 작은 아이가 물었어. 뭐래. 큰 아이가 말했어. 잘 살고 있냬. 작은 아이가 말했어. 잘 살고 있다고 해. 큰 아이가 말했어. 이미 그렇게 말했어.

두 아이는 그 자리에 좀 더 앉아 있었어. 풀밭에서 가장 낮은 자리였어. 거기 앉아 있으면 풀의 끝이 머리 위에 있었어. 작은 아이가 머리 위로 손을 뻗었어. 손끝에 풀의 끝이 닿았어. 그러다가 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어. 작은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도 지나갔어. 이름이 없는 바람이었어. 작은 아이는 이제 그 바람을 만나면 그냥 손가락을 펴서 사이로 지나가게 했어. 잡으려고 하지 않았어. 잡으려고 하면 도망간다는 걸 알았거든.

그 풀밭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두 아이는 그 뒤로도 오래 살았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몰라. 풀밭 가운데 살던 사람들 이야기는 풀밭 밖으로 잘 안 나오거든. 그래서 어느 옛날 사람이 어떻게 알고 이야기를 적어 두었다는 건, 그 사람이 아마 직접 가 봤다는 뜻일 거야. 가서 두 아이를 만나고, 두 아이가 늙은 모습까지 보고, 그러고 돌아와서 적었을 거야. 그 사람도 어쩌면 손님이었을지도 몰라. 작은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작은 아이가 외운 이름 중에 자기 마을이 있는지 확인했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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