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한 자리에 있었어. 풀밭처럼 넓지도 않고, 강처럼 흐르지도 않고, 그냥 한 자리에 있었어. 산이 한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산도 움직여. 아주 천천히. 사람의 시간으로는 안 보이고, 산의 시간으로 보면 산도 움직여. 산은 한쪽으로 조금씩 기울어. 비가 오면 흙이 한쪽으로 쓸려 가고, 바람이 불면 잎이 한쪽으로 떨어지니까. 그래서 아주 오래 살아남은 사람만 알아. 자기가 어렸을 때 보던 산의 모양이랑 늙어서 보는 산의 모양이 좀 다르다는 거. 그걸 알아본 사람이 아주 옛날에 산 중턱에 살고 있었어.
이름이 노할미였어. 진짜 이름은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어. 노할미는 산 중턱 외딴집에 혼자 살았어. 마을은 산 아래에 있었어. 마을 사람들이 노할미를 보러 가려면 한나절을 올라가야 했어. 그래서 자주 가지는 않았어. 가도 일 년에 두어 번. 명절 때, 그리고 누가 아프거나 죽거나 태어났을 때.
노할미는 마을 사람들이 올라오면 뭘 봐 줬어. 뭘 봐 줬느냐면, 안 보이는 걸 봐 줬어.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아픈 사람이 왜 아픈지, 어떤 자리에 집을 지으면 좋은지. 마을 사람들이 노할미에게 물으면, 노할미가 한참 가만히 있다가 답을 해 줬어. 답이 항상 맞는 건 아니었어. 그런데 안 맞아도 마을 사람들은 노할미를 원망하지 않았어. 노할미는 자기가 답을 안다고 한 적이 없었거든. 마을 사람들이 묻길래 자기가 보이는 만큼만 말한 거였어. 보이는 만큼 말한다는 게 어떤 건지, 마을 사람들도 알았어. 그래서 안 맞아도 됐어.
노할미한테는 손녀가 있었어. 진짜 손녀는 아니고, 그냥 노할미가 손녀라고 불렀어. 마을 어느 집의 셋째 딸이었는데, 다섯 살 때부터 노할미 집을 좋아해서 자꾸 올라왔어. 처음에는 어머니가 따라 올라왔어. 다섯 살짜리가 산을 혼자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일곱 살이 되자 혼자 올라오기 시작했어. 산길을 다 외운 거야. 어느 자리에서 왼쪽으로 꺾고, 어느 자리에서 큰 바위를 끼고 돌고, 어느 자리에서 개울을 건너야 하는지. 일곱 살짜리가 그걸 다 외웠어. 노할미가 그 아이를 손녀라고 부른 건 그때부터였어.
손녀는 노할미 집에 오면 별로 안 떠들었어. 마을에서는 시끄러운 아이라고 했는데, 노할미 집에 오면 조용했어. 와서 그냥 노할미 옆에 앉아 있었어. 노할미가 뭘 하면 그걸 봤어. 노할미가 약초를 다듬으면 약초를 보고, 노할미가 차를 끓이면 차를 봤어. 노할미는 손녀에게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어. 다만 손녀가 보고 있으면 자기 하던 걸 좀 천천히 했어. 손녀가 잘 볼 수 있도록.
손녀는 그 천천히가 좋았어. 마을에서는 모든 게 빨랐거든. 어머니는 빨리 밥을 하고, 아버지는 빨리 일을 하고, 오빠들은 빨리 뛰어다녔어. 손녀는 셋째라서 늘 뒤에 있었어. 따라가려고 해도 잘 못 따라갔어. 그런데 노할미 집은 빠른 게 없었어. 노할미가 천천히 움직이니까 손녀도 천천히 움직이면 됐어. 천천히 움직여도 아무도 손녀를 놓고 가지 않았어. 노할미는 손녀가 다 볼 때까지 기다려 줬어.
손녀가 열 살이 됐을 때, 노할미가 처음으로 뭘 가르쳐 줬어. 가르쳐 줬다기보다는, 그냥 보여 줬어. 뭐였느냐면, 산을 보는 법이었어. 노할미가 손녀를 데리고 집 앞 마당으로 나갔어. 마당에서 산이 잘 보였어. 노할미가 손녀에게 말했어. 산을 봐. 손녀가 봤어. 노할미가 물었어. 뭐가 보여. 손녀가 말했어. 산이 보여. 노할미가 또 물었어. 더. 손녀가 말했어. 나무가 보여. 노할미가 또 물었어. 더. 손녀가 한참 생각하다 말했어. 모르겠어. 노할미가 말했어. 더 보면 더 보여. 그런데 더 보려면 시간이 좀 걸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자.
다음 날도 둘이 마당에 섰어. 노할미가 또 물었어. 뭐가 보여. 손녀가 어제처럼 산이 보인다고 했어. 나무가 보인다고도 했어. 그런데 그날은 한 가지가 더 보였어. 산 어디쯤에 길이 하나 나 있는 거. 어제는 안 보였는데 오늘은 보였어. 손녀가 그걸 말했어. 노할미가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보이지. 그 길은 어제도 거기 있었어. 그런데 어제는 네가 못 봤어. 오늘은 봤어. 손녀가 물었어. 왜 어제는 못 봤어. 노할미가 말했어. 어제는 너무 빨리 봤어. 오늘은 좀 더 오래 봤어. 그러니까 보였어.
손녀는 그 가을에 매일 마당에 나와서 산을 봤어. 어떤 날은 길이 두 개로 보였고, 어떤 날은 길 옆에 작은 공터가 있는 게 보였고, 어떤 날은 공터에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있는 게 보였어. 산은 한 자리에 있는데, 손녀가 보는 게 매일 달랐어. 손녀는 그게 신기했어. 노할미한테 물었어. 산이 변하는 거야, 내가 변하는 거야. 노할미가 말했어. 둘 다 변해. 그런데 산이 변하는 게 너보다 훨씬 느려. 그러니까 네가 더 변해. 손녀가 물었어. 그럼 산은 안 변하는 거나 마찬가지네. 노할미가 말했어. 아니. 산도 변해. 다만 네가 평생 봐도 다 못 볼 만큼 천천히 변해. 그게 산이야.
겨울이 왔어. 산에 눈이 왔고, 손녀는 한동안 노할미 집에 못 올라왔어. 눈이 너무 깊어서 어머니가 못 가게 했어. 손녀는 마을 집에서 산을 봤어. 마을에서는 산이 다르게 보였어. 산 중턱에서 봤던 길이 안 보였어. 다만 산 전체가 한 덩어리로 보였어. 손녀는 처음으로 산을 한 덩어리로 봤어. 한 덩어리로 보면 산이 좀 커 보였어. 부분으로 볼 때는 안 그랬는데, 한 덩어리로 보니까 산이 거대했어. 손녀는 산이 거대하다는 걸 그 겨울에 처음 알았어.
봄이 와서 눈이 녹았어. 손녀가 다시 노할미 집에 올라갔어. 올라가는 길에 산이 좀 달라 보였어. 부분도 보이고, 한 덩어리로도 보였어. 둘 다 보이는 게 처음이었어. 노할미 집에 도착해서, 손녀가 노할미한테 말했어. 산이 두 가지로 보여. 노할미가 물었어. 어떻게. 손녀가 말했어. 가까이서는 부분으로 보이고, 멀리서는 한 덩어리로 보여. 그런데 두 가지가 같이 보여. 노할미가 그걸 듣고 한참 가만히 있었어. 그러더니 말했어. 너 이제 시작이다. 손녀가 물었어. 뭐가 시작이야. 노할미가 말했어. 보는 게. 너 이제 보기 시작했어. 손녀가 물었어. 그럼 그동안은 안 본 거야. 노할미가 말했어. 보긴 봤지. 그런데 두 가지로 본 건 처음이잖아. 보는 거는 두 가지로 볼 때부터가 진짜야. 한 가지로만 보는 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쳐다보는 거야.
손녀는 그 봄에 산을 자주 봤어. 노할미 집에서도 보고, 마을에서도 봤어. 두 가지로 보는 게 점점 익숙해졌어. 익숙해지자 손녀는 다른 것도 두 가지로 보기 시작했어. 어머니의 얼굴을 두 가지로 봤어. 가까이서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주름이 많고 피곤한 얼굴이었어. 멀리서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집안 전체에서 가장 단단한 얼굴이었어. 둘 다 어머니의 얼굴이었어. 둘이 같이 보이니까 어머니가 좀 다르게 느껴졌어. 어머니가 피곤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 어머니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어. 그 둘이 한 사람 안에 있다는 게, 어머니가 어머니인 이유 같았어.
여름이 됐어. 손녀가 열한 살이 됐어. 그해 여름에 마을에 일이 좀 있었어. 마을의 한 집에서 사람이 죽었어. 늙은 사람이 아니라 젊은 사람이었어. 갑자기 죽었어. 마을 사람들이 노할미에게 올라와서 물었어. 왜 죽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위험한지. 노할미는 한참 가만히 있다가 답했어. 그 사람은 자기 속에서 죽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안 위험해요. 마을 사람들이 물었어. 자기 속에서 죽었다는 게 뭐예요. 노할미가 말했어. 사람이 자기 속을 너무 오래 안 보면, 속이 무거워져요. 무거워진 속이 어느 날 사람을 끌고 가요. 그 사람이 그렇게 갔어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한참 가만히 있었어. 그러고는 내려갔어. 노할미의 답이 위로가 됐는지 안 됐는지 손녀는 몰랐어. 다만 마을 사람들이 내려가는 뒷모습이 좀 무거워 보였어.
손녀가 노할미한테 물었어. 자기 속을 본다는 게 뭐야. 노할미가 말했어. 자기를 두 가지로 본다는 거야. 가까이서 보는 자기와, 멀리서 보는 자기. 손녀가 물었어. 어떻게 멀리서 봐. 자기는 자기 안에 있는데. 노할미가 말했어. 그래서 어려워. 자기를 멀리서 보는 건 산을 두 가지로 보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평생 못 보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가끔은 봐. 누가 자기를 보고 있을 때, 자기를 그 사람 눈으로 한번 보는 거야. 그게 자기를 멀리서 보는 거야. 손녀가 물었어. 누가 보면 좋은데. 노할미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말했어. 너를 잘 봐 주는 사람. 너를 빠르게 안 보고 천천히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너를 볼 때, 그 사람 눈을 통해서 너를 봐. 그게 너를 멀리서 보는 거야.
손녀는 그 말을 들으면서, 노할미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노할미가 자기를 천천히 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손녀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어. 노할미한테 그 말을 하면 노할미가 좀 어색해할 것 같았거든. 노할미는 그런 말을 잘 못 받는 사람이었어. 자기에 대한 말은 잘 못 듣는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보는데, 자기에 대해서는 안 보려고 하는 사람. 손녀는 그게 노할미의 가장 약한 자리라는 걸 그 여름에 알았어.
가을이 왔어. 노할미가 한 번 앓아누웠어. 며칠 만에 다시 일어났는데, 일어난 뒤에 좀 달라졌어. 손이 좀 떨렸어. 약초를 다듬을 때 손이 떨려서, 다듬는 게 잘 안 됐어. 손녀가 그걸 봤어. 손녀가 약초를 받아서 대신 다듬었어. 노할미는 가만히 보고 있었어. 손녀가 다듬는 걸 보면서, 노할미가 말했어. 너 손이 안 떨리네. 손녀가 말했어. 응. 노할미가 말했어. 좋다. 손녀가 말했어. 뭐가. 노할미가 말했어. 네 손이 안 떨리는 거. 손녀는 그 말을 듣고 좀 슬펐어. 자기 손이 안 떨리는 게 좋은 건 맞는데, 노할미의 손이 떨린다는 게 슬펐어. 손녀는 그 슬픔을 노할미한테 말하지 않았어. 다만 약초를 좀 더 천천히 다듬었어. 노할미가 자기 손을 천천히 보던 그 속도로.
겨울이 또 왔어. 그 겨울에 손녀는 마을에 내려가지 않았어. 노할미 집에 머물렀어. 어머니에게 미리 말하고, 노할미 집에서 겨울을 났어. 마을에서는 손녀가 노할미를 돕는다고 알았어. 그게 맞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어. 손녀는 노할미를 돕기도 했지만, 노할미한테 더 배우고 싶기도 했어. 노할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노할미가 아직 가르쳐 줄 수 있을 때 배우고 싶었어. 그게 다 무엇이었는지 손녀도 잘 몰랐어. 다만 노할미 옆에 있으면 뭐가 자꾸 보였어. 노할미가 보는 걸 손녀도 같이 봤어. 노할미가 안 보는 걸 손녀가 보기도 했어. 노할미가 자기 자신을 안 본다는 거. 그건 노할미가 안 보고, 손녀만 봤어.
그 겨울의 어느 밤, 손녀가 노할미한테 말했어. 할미. 노할미가 응 했어. 손녀가 말했어. 할미는 자기를 안 봐. 노할미가 잠깐 가만히 있었어. 그러더니 말했어. 알아. 손녀가 물었어. 왜 안 봐. 노할미가 말했어. 보면 무서워서. 손녀가 물었어. 뭐가 무서워. 노할미가 말했어. 자기는 자기를 보면 어디까지 보일지 모르거든. 안 보는 게 편해. 손녀가 물었어. 그래도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자기 속을 너무 오래 안 보면 속이 무거워진다고 할미가 그랬잖아. 노할미가 그 말을 듣고 한참 가만히 있었어. 한참이라는 게 정말 한참이었어. 손녀는 노할미가 답을 안 할 줄 알았어. 그런데 노할미가 답했어. 그래. 봐야 해. 보는 게 무서워도. 손녀가 물었어. 같이 봐 줄까. 노할미가 손녀를 봤어. 손녀의 얼굴을 천천히 봤어. 그러더니 말했어. 그래 줄래. 손녀가 말했어. 응.
그 겨울에 둘이 같이 노할미를 봤어. 노할미가 자기 안의 것들을 하나씩 꺼내서 말했어. 노할미가 어렸을 때 잃어버린 동생 얘기, 노할미가 젊었을 때 좋아했던 사람 얘기, 노할미가 산에 처음 올라온 이유 얘기. 손녀는 다 들었어. 한 번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어. 노할미가 말할 때마다 손녀는 노할미의 얼굴을 봤어. 가까이서도 보고, 좀 떨어져서도 봤어. 두 가지로 보면서 들었어. 가까이서 본 노할미는 늙고 떨리는 사람이었어. 떨어져서 본 노할미는 평생 자기를 안 본 사람이었어. 둘 다 노할미였어. 손녀는 그 둘을 다 봤어. 그게 손녀가 노할미한테 해줄 수 있는 거였어.
봄이 왔어. 노할미는 그 봄에 돌아가셨어. 죽기 전에 손녀에게 말했어. 산을 잘 봐. 손녀가 응 했어. 노할미가 또 말했어. 너도 잘 봐. 손녀가 응 했어. 노할미가 마지막으로 말했어. 둘 다 잘 봐. 손녀가 응 했어. 그게 다였어. 노할미는 그 봄의 어느 아침에 잤어. 손녀가 보는 앞에서 잤어. 손녀는 노할미가 잠든 줄 알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일어나서 그제야 알았어. 잠든 게 아니라 간 거였어. 손녀는 울지 않았어. 울 줄 모르는 건 아니었어. 다만 그날은 우는 게 안 맞는 것 같았어. 노할미가 천천히 갔으니까, 손녀도 천천히 보내 줘야 할 것 같았어.
손녀는 노할미를 산 중턱에 묻었어. 마을 사람들이 올라와서 같이 묻었어. 묻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물었어.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손녀가 말했어. 여기 살래. 마을 사람들이 물었어. 혼자. 손녀가 말했어. 응. 마을 사람들이 좀 말렸어. 열두 살짜리가 산에 혼자 사는 건 너무 외롭다고. 손녀가 말했어. 안 외로워. 산이 있잖아. 마을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더 안 말렸어. 노할미가 가르친 아이라는 게 마을 사람들도 보였거든. 노할미처럼 말하는 아이가 산에 혼자 살겠다고 하면, 그건 좀 노할미 같은 거였어. 마을 사람들은 손녀가 노할미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그날 알았어.
손녀는 그 뒤로 산에 혼자 살았어. 노할미가 살던 집에서, 노할미가 하던 일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가끔 올라왔어. 손녀에게 뭘 봐 달라고 했어. 손녀는 노할미처럼 한참 가만히 있다가 답을 해 줬어. 답이 항상 맞는 건 아니었어.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손녀를 원망하지 않았어. 손녀도 자기가 답을 안다고 한 적이 없었거든. 사람들이 묻길래 자기가 보이는 만큼만 말한 거였어. 노할미랑 똑같았어. 마을 사람들이 손녀를 노할미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어. 손녀가 늙어서 진짜 할머니가 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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