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이름이 없었어. 아니, 이름이 너무 많았다고 해야 맞을 거야. 강은 길었거든. 시작과 끝 사이에 마을이 여럿 있었고, 마을마다 자기네 앞을 흐르는 강을 자기네 식대로 불렀어. 윗마을에서는 푸른 강이라고 했고, 가운데 마을에서는 빠른 강이라고 했고, 아랫마을에서는 깊은 강이라고 했어. 같은 강인데 이름이 다 달랐어. 강은 어느 이름에도 대답하지 않았어. 강은 자기 이름을 안 듣고 살았어. 그게 강이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래.
강가에 한 여자아이가 살았어. 가운데 마을이었어. 그래서 그 아이는 강을 빠른 강이라고 불렀어. 사실 그 아이가 사는 자리에서 보면 강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어. 그 자리에서는 강이 한 번 휘어졌거든. 휘어지는 자리에서는 물이 느려져.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다 빠른 강이라고 부르니까 그 아이도 그렇게 불렀어. 이름은 그런 거야. 자기가 보는 것보다 남들이 보는 게 더 세.
여자아이는 어머니랑 둘이 살았어. 어머니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았어. 그물을 던지는 게 아니라 손으로 잡았어.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빠르다고 했어. 그 손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좀 무서워했어. 사람 손이 물고기보다 빠를 수가 없는데, 어머니의 손은 그랬으니까. 어머니는 잡은 물고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어.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어머니의 물고기를 샀어. 어머니의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보다 살이 단단했거든. 손으로 잡으면 그렇게 된다고, 어머니가 여자아이에게 가르쳐 줬어. 그물로 잡으면 물고기가 그물 안에서 한참 발버둥치다가 지쳐서 살이 풀어지는데, 손으로 잡으면 한 번에 잡히니까 살이 그대로 단단하다고.
여자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좋아했어. 손이 빠르다는 건 둘째 치고, 그 손이 자기 머리를 빗어 줄 때가 좋았어. 어머니는 손이 빠르니까 머리를 빗는 것도 빨랐어. 그게 좀 아쉬웠어. 좀 더 천천히 빗어 주면 좋겠는데, 어머니의 손은 천천히 하는 법을 잘 몰랐어.
어느 봄에 어머니가 손을 다쳤어. 강가의 바위에서 미끄러진 거였어. 오른손을 짚었는데, 손목이 비틀렸어. 손이 부어올랐고, 손가락이 제대로 안 움직였어. 어머니는 한동안 물고기를 못 잡았어. 그동안 여자아이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어. 어머니가 가르쳐 줬어. 물고기는 자기를 잡으러 오는 손을 봐. 그러니까 손을 빨리 움직이면 안 돼. 손을 움직이지 말고 물고기가 손 쪽으로 오게 해야 돼. 손은 그냥 거기 있는 거야. 거기 있다가, 물고기가 닿는 순간에 잡는 거야. 여자아이는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처음에는 몰랐어. 강물에 손을 담그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 손이 시려서 떨렸어. 어머니가 와서 여자아이의 손을 보고 말했어. 떨면 안 돼. 떨면 물고기가 와도 못 잡아. 여자아이는 떨지 않으려고 했지만, 손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됐어.
여자아이가 처음 물고기를 잡은 건 한 달이 지나서였어. 강물이 좀 따뜻해진 뒤였어. 손이 안 떨릴 만큼 강물이 따뜻해지자, 여자아이는 강물에 손을 담그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어.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물고기 한 마리가 손 옆을 지나갔어. 여자아이는 잡지 않았어. 다음 물고기가 또 지나갔어. 여자아이는 또 잡지 않았어. 세 번째 물고기가 손등을 스쳤어. 여자아이는 그제야 잡았어. 한 번에 잡혔어. 살이 단단한 물고기였어. 여자아이는 그걸 들고 집에 갔어. 어머니가 그 물고기를 보고 웃었어. 어머니가 다친 뒤로 처음 웃는 거였어.
여름이 됐어. 어머니의 손은 다 나았는데, 예전만큼 빠르지는 않았어. 어머니는 그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것 같았어. 이제 여자아이가 같이 잡을 수 있으니까. 둘이 같이 강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 그 시간 동안 어머니는 별 말이 없었어. 여자아이도 별 말이 없었어. 강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어. 강은 휘어지는 자리에서 느렸지만, 휘어지는 자리를 빠져나가면 다시 빨라졌어. 그 빨라지는 소리가 둘 사이에 늘 있었어.
그 여름의 어느 날, 강 윗마을에서 누가 떠내려왔어. 사람이었어. 살아 있었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가운데 마을의 휘어지는 자리에서 멈춘 거였어. 어머니가 그 사람을 끌어냈어. 여자아이도 같이 끌어냈어. 사람을 끌어내는 건 물고기를 끌어내는 것보다 어려웠어. 무거우니까. 어머니의 손은 빠르지만 힘이 그렇게 세지는 않았어. 여자아이가 더 힘이 셌어. 여자아이가 어느새 어머니보다 힘이 세져 있다는 걸 그날 둘 다 알았어.
떠내려온 사람은 젊은 여자였어. 옷이 다 젖었고, 얼굴이 창백했어. 숨은 쉬고 있었어. 어머니가 그 여자를 집으로 데려갔어.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따뜻한 죽을 끓여 먹였어. 여자는 한참을 잤어. 깨어났을 때, 여자는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았어. 어디서 왔는지도 말하지 않았어. 다만 살려 줘서 고맙다고 했고, 며칠만 신세를 지겠다고 했어. 어머니는 더 묻지 않았어. 어머니는 묻지 않는 게 묻는 것보다 나을 때를 잘 아는 사람이었어.
여자는 며칠이 지나도 떠나지 않았어. 가는 길을 모른다고 했어.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잊었다고 했어. 강에 떠내려오면서 머리를 부딪쳤는지, 떠내려오기 전의 일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어머니는 그 말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모르겠어. 다만 더 묻지 않았고, 여자를 그냥 두었어. 여자는 집안일을 도왔어. 손이 야무진 사람이었어. 빨래를 하면 빨래가 깨끗했고, 음식을 하면 간이 잘 맞았어. 여자아이는 그 여자를 좀 좋아하게 됐어.
여자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빗어 줬어. 어머니보다 천천히 빗었어. 여자아이가 평소에 아쉬워하던 그 천천히였어. 여자아이는 머리를 빗기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어. 여자의 손이 머리를 한 번 쓸고, 다시 한 번 쓸고, 매듭이 생긴 자리에서 잠깐 멈췄다가 풀어내고, 다시 쓸고. 여자아이는 그 손길이 한 번 한 번 다 셀 수 있을 만큼 느렸다고 나중에 기억했어. 셀 수 있는 손길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거구나, 하고 여자아이는 생각했어.
가을이 됐어. 여자는 아직 안 떠났어.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어. 어머니랑 여자아이만 사는 집에 모르는 여자가 한 명 더 사는 게, 마을 사람들 보기에 좀 이상했나 봐.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안 들었어. 어머니는 원래 마을 사람들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었어. 손이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는 것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여자아이는 좀 신경이 쓰였어. 마을에 빨래하러 가면 사람들의 시선이 평소랑 좀 달랐거든. 그렇다고 여자가 떠나기를 바라지는 않았어. 떠나는 건 싫었어. 머리를 천천히 빗어 주는 사람이 떠나는 건 싫었어.
여자가 어느 저녁에 강가에 앉아 있었어. 여자아이가 그 옆에 가서 앉았어. 둘이 강물을 보고 있었어. 여자가 먼저 말했어. 나 사실은 기억이 다 나. 여자아이는 놀라지 않았어. 어쩐지 알고 있었던 것 같았어. 여자가 말했어. 나는 윗마을에서 왔어. 윗마을에서 결혼을 시키려고 했어. 가기 싫었어. 그래서 도망쳤어. 강에 뛰어들었어. 죽으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강이 어디로든 데려가 주기를 바랐어. 강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여자아이가 물었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여자가 말했어. 모르겠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갈 데도 없어. 여자아이가 말했어. 가만히 있어도 돼. 여자가 여자아이를 봤어. 여자아이가 말했어. 어머니한테 말할게. 어머니는 안 쫓아낼 거야. 여자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물었어. 너는 왜 그렇게 말해. 여자아이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했어. 자기도 왜 그런지 잘 몰랐어. 그냥 여자가 가는 게 싫었어. 머리를 천천히 빗어 주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게 좋았어. 그 이상은 말로 못 하겠어서, 여자아이는 그냥 강물을 봤어.
여자는 그날 밤에 어머니에게 다 말했어. 어머니는 들었어. 다 듣고 나서 말했어. 알았어. 그게 다였어.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어. 길게 말 안 하는 사람. 여자가 어머니에게 절을 했어. 어머니는 절은 됐다고 했어. 절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게 아니라고. 그냥 자기 집에 자리가 있어서 둔 것뿐이라고.
그 뒤로 셋이 살았어. 어머니, 여자아이, 그리고 여자. 여자는 강에서 같이 물고기를 잡았어. 손은 빠르지 않았어. 어머니나 여자아이만큼 빠르지 않았어. 그래서 여자는 다른 일을 더 많이 했어.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고, 말리고, 마을에 가져가 파는 일. 여자가 마을에 가면 사람들이 더 수군거렸지만, 여자는 그걸 잘 견뎠어. 윗마을에서 결혼 도망친 사람이라는 게 어떻게 알려졌는지, 마을 사람들도 곧 알았어. 그래도 어머니의 물고기는 여전히 잘 팔렸어. 살이 단단한 물고기를 살 곳이 거기밖에 없으니까.
겨울이 왔어. 강이 일부 얼었어. 휘어지는 자리만 얼었어. 빨라지는 자리는 안 얼었어. 강은 자기가 느려지는 자리만 얼게 두는 것 같았어. 셋은 얼지 않는 자리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어. 손이 더 시렸어. 여자아이는 그해 겨울에 손이 떨리지 않는 법을 완전히 익혔어. 시려도 안 떨렸어. 어머니가 그걸 보고 한 번 더 웃었어. 어머니가 잘 안 웃는 사람이라, 한 번 웃는 게 큰일이었어.
봄이 왔어. 강이 다시 다 풀렸어. 휘어지는 자리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며칠 동안 났어. 얼음이 다 풀린 뒤에, 여자가 여자아이에게 말했어. 같이 어디 좀 가자. 여자아이가 물었어. 어디. 여자가 말했어. 강을 따라 내려가 보자. 아랫마을까지. 거기 가 본 적 있어. 여자아이가 말했어. 없어. 여자가 말했어. 그럼 같이 가자. 어머니한테 며칠만 다녀오겠다고 하고.
여자아이는 어머니에게 말했어. 어머니는 가라고 했어. 며칠이면 되니까. 어머니는 손이 다시 빨라져 있었어. 물고기는 혼자서도 잡을 수 있다고 했어.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잠깐 봤어. 어머니는 평소처럼 별 표정이 없었어. 다만 여자아이의 머리에 손을 한 번 얹어 줬어. 손이 따뜻했어. 어머니의 손이 따뜻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그날은 따뜻했어. 여자아이는 그게 어쩐지 마음에 오래 남았어.
여자아이와 여자는 강을 따라 걸었어. 아랫마을까지는 사흘 길이었어. 첫날은 강이 천천히 흘렀어. 둘은 강 옆을 천천히 걸었어. 여자가 강을 보면서 말했어. 강이 너희 마을에서는 빠른 강인데, 우리 마을에서는 푸른 강이었어. 여자아이가 말했어. 아랫마을에서는 깊은 강이래. 여자가 물었어. 너는 강을 뭐라고 부르고 싶어. 여자아이는 한참을 생각했어. 그러다 말했어. 이름 없는 강. 여자가 웃었어. 그건 강 자기가 좋아할 이름이야. 여자아이가 물었어. 강이 이름을 좋아해. 여자가 말했어. 응. 자기를 안 부르는 이름이니까. 강은 자기를 안 부르는 이름을 좋아해.
둘째 날 강이 빨라졌어. 강을 따라 걷는 게 좀 힘들어졌어. 강 옆이 가파르게 깎인 자리가 있어서, 거기는 좀 떨어져서 걸어야 했어. 여자가 앞장섰어. 여자아이가 뒤따라갔어. 여자가 가끔 뒤를 돌아봤어. 여자아이가 잘 따라오는지 보려고. 여자아이는 잘 따라가고 있었어. 다리가 길어서, 보폭이 컸어. 여자가 그걸 보고 말했어. 너 키가 컸네. 여자아이가 말했어. 그랬나. 여자가 말했어. 응. 작년보다 한 뼘은 더 컸어. 여자아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좀 묘한 기분이 들었어. 자기 키가 큰 걸 자기는 잘 모르는데, 여자는 알고 있다는 게. 누군가가 자기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게. 어머니도 자기를 보지만, 어머니의 시선은 좀 달라. 어머니의 시선은 자기 자식을 보는 시선이야. 여자의 시선은 그런 게 아니야. 그게 뭔지 여자아이는 잘 몰랐는데, 다른 거라는 건 알았어.
셋째 날 아랫마을이 보였어. 마을이 강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어. 강 위에 다리가 있었어. 가운데 마을에는 다리가 없었어.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거나 휘어지는 자리에서 헤엄을 쳐야 했어. 다리를 보면서 여자아이가 놀랐어. 강을 그냥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게 신기했어. 여자가 말했어. 다리 좋지. 여자아이가 말했어. 좋아. 둘은 다리 위를 같이 걸어서 강을 건넜어. 다리 위에서 잠깐 멈춰서 아래를 봤어. 강이 다리 밑으로 깊게 흘렀어. 아랫마을에서 이 강을 깊은 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보였어. 정말 깊었어. 바닥이 안 보일 만큼.
여자가 다리 위에서 여자아이에게 말했어. 나 여기서 며칠 머물 거야. 너는 어떻게 할래. 여자아이가 물었어. 같이 머물면 안 돼. 여자가 말했어. 같이 머물러도 돼. 그런데 너는 가운데 마을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 어머니가 기다리잖아. 여자아이가 말했어. 며칠 더 있어도 돼. 어머니가 며칠이면 된다고 했어. 며칠은 좀 많아도 며칠이야. 여자가 웃었어. 그래. 며칠은 좀 많아도 며칠이지.
둘은 아랫마을에서 며칠을 묵었어. 강가의 작은 여관에 묵었어. 방이 하나밖에 안 남아 있었어. 같이 썼어. 침대가 두 개 있어서 따로 잤어. 그런데 어느 밤에 비가 왔어. 천장이 좀 새는 방이었어. 여자의 침대 쪽으로 물이 떨어졌어. 여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옮겼어. 여자아이의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거기 앉았어. 여자아이는 자는 척했어. 한참을 자는 척하다가, 손을 침대 옆으로 내밀었어. 여자가 그 손을 잡았어. 차가운 손이었어. 비가 와서 그런지. 여자아이는 그 손을 잡고 다시 자는 척했어. 자는 척하다가 진짜로 잠들었어. 아침에 깨 보니 여자는 자기 침대로 돌아가 있었고, 천장은 안 새고 있었어. 비가 멈춰 있었어. 손에는 여자의 온기가 아직 좀 남아 있는 것 같았어. 아닐 수도 있고.
여자아이와 여자는 아랫마을에서 닷새를 묵었어. 며칠은 좀 많아도 며칠이라고 했던 그 며칠이 닷새였어. 닷새째 되는 날 아침에 여자가 말했어. 너 이제 가야 돼. 여자아이가 물었어. 같이 안 가. 여자가 말했어. 응. 나는 좀 더 있을 거야. 여자아이가 물었어. 언제 와. 여자가 잠깐 가만히 있었어. 그러다 말했어. 모르겠어.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어. 여자아이는 더 묻지 않았어. 더 물으면 답이 안 좋아질 것 같았거든.
여자가 여자아이의 머리를 빗어 줬어. 떠나기 전에. 천천히 빗었어. 평소보다 더 천천히. 매듭이 생긴 자리마다 한참씩 멈췄어. 풀고, 빗고, 다시 풀고. 여자아이는 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어. 머리를 빗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 빗질이 다 끝났을 때, 여자가 여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잠깐 얹었다가 뗐어. 그게 인사였어. 여자아이는 알았어. 그게 인사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인사라는 걸 모르는 척하고 싶었어. 그래서 그냥 짐을 챙겼어.
다리 앞까지 여자가 따라 나왔어. 다리를 여자아이 혼자 건넜어. 다 건너서 뒤를 돌아봤어. 여자가 다리 건너편에 그대로 서 있었어. 여자아이가 손을 들었어. 여자도 손을 들었어. 그게 끝이었어.
여자아이는 강을 따라 거꾸로 올라갔어. 사흘 길을 혼자 걸었어. 첫날은 강이 깊고 빨랐어. 둘째 날은 강이 좀 잔잔해졌어. 셋째 날은 강이 휘어지기 시작했어. 가운데 마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어. 혼자 걷는 동안 여자아이는 별생각이 없었어. 생각을 하려고 하면 생각이 다 한쪽으로만 흘러서, 생각을 안 하려고 했어. 강물 소리만 들었어. 강물이 어느 자리에서는 빠르게, 어느 자리에서는 느리게 흘렀어. 같은 강인데 자리마다 속도가 달랐어. 사람도 그런 것 같다고 여자아이는 잠깐 생각했어. 그러고는 다시 생각을 멈췄어.
집에 도착했어. 어머니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어. 여자아이를 보고 어머니는 손을 잠깐 멈췄어. 다시 손을 움직였어. 잡고 있던 물고기를 마저 잡고, 그러고 나서 강에서 나왔어. 여자아이에게 다가왔어. 여자아이의 얼굴을 한 번 봤어. 더 묻지 않았어.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잖아. 묻지 않는 게 묻는 것보다 나을 때를 잘 아는 사람.
그날 밤 어머니가 죽을 끓였어.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죽이었어. 좁쌀에 말린 물고기를 넣어 끓인 거. 둘이 마주 앉아 먹었어. 셋이 먹다가 둘이 먹으니까, 그릇 하나만큼의 자리가 비어 있는 게 자꾸 보였어. 여자아이는 그 자리를 안 보려고 했어. 어머니는 그 자리에 자기 그릇을 슬쩍 옮겨 놨어. 그러니까 비어 보이지 않았어. 어머니는 별말 안 하면서도 그런 걸 다 하는 사람이었어.
그날 밤 여자아이가 어머니에게 물었어. 그 사람 안 올 거지. 어머니가 말했어. 모르지. 여자아이가 말했어. 안 올 것 같아. 어머니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말했어. 안 와도 괜찮아. 여자아이가 물었어. 왜. 어머니가 말했어. 안 와도, 그 사람이 여기 있었던 건 안 없어져. 빨래를 같이 했던 거, 물고기를 같이 손질했던 거, 너 머리 빗어 준 거. 그게 다 어디 안 가. 여자아이는 그 말을 듣고 한참 가만히 있었어. 그러다 말했어. 어머니. 어머니가 응 했어. 여자아이가 말했어. 나 그 사람 좋아했어. 어머니가 또 응 했어.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어. 여자아이가 물었어. 알고 있었어. 어머니가 말했어. 알고 있었어. 여자아이가 물었어. 언제부터. 어머니가 말했어. 네가 그 사람 머리 빗기는 거 가만히 받고 있을 때부터. 너는 어머니가 빗어 줄 때는 자꾸 머리 흔들었거든. 어머니가 너무 빨리 빗으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빗을 때는 안 흔들었어. 그래서 알았어.
여자아이는 죽을 한 술 더 떴어. 죽이 좀 식어 있었어. 식은 죽이 따뜻한 죽보다 맛있다고 여자아이는 그날 처음 알았어. 식으면 맛이 더 잘 보여. 좁쌀의 맛, 말린 물고기의 맛, 소금 간의 맛. 따뜻할 때는 다 섞여 있던 게 식으면 하나씩 보여. 여자아이는 그 식은 죽을 다 먹었어. 어머니는 옆에서 자기 그릇을 비웠어. 그게 다였어.
그 뒤로 여자아이는 어머니랑 둘이 다시 살았어. 셋이 살기 전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셋이 살기 전과 같지는 않았어. 여자아이는 셋이었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그랬어. 둘은 그 기억을 굳이 말하지 않았어. 말 안 해도 알았으니까. 어머니는 여자아이의 머리를 가끔 빗어 줬는데, 예전보다 좀 천천히 빗었어. 손이 다친 뒤로 손이 느려진 것도 있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빗는 것 같기도 했어. 여자아이는 그게 좀 마음에 걸렸어. 어머니가 자기를 위해 일부러 손을 늦추고 있는 거라면, 그건 좀 미안했거든. 그래서 어느 날 여자아이가 말했어. 어머니. 빨리 빗어도 돼. 어머니가 물었어. 왜. 여자아이가 말했어. 어머니 손은 빠른 게 맞아. 어머니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말했어. 알았어. 그러고는 다시 빨리 빗기 시작했어. 여자아이는 그 빠른 빗질이 좀 좋았어. 그게 어머니의 손이니까. 어머니의 손은 빠른 손이어야 어머니의 손이니까.
그 여름, 어머니가 여자아이에게 마지막 한 가지를 가르쳐 줬어. 그게 뭐였냐면, 물고기를 놓아 주는 법이었어. 잡는 법은 다 가르쳤으니까, 이제 놓아 주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어. 여자아이는 어리둥절했어. 잡으려고 잡는 거 아니야. 어머니가 말했어. 잡으려고 잡는 거 맞아. 그런데 잡은 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그때그때 달라. 살이 단단한 물고기는 마을에 팔아. 그런데 가끔 잡으면 안 되는 물고기가 잡혀. 너무 작은 물고기. 알이 밴 물고기.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물고기. 그런 건 잡았어도 놓아 줘야 돼. 여자아이가 물었어. 어떻게 놓아 줘. 어머니가 말했어. 손을 펴는 거야. 그냥 손을 펴면 물고기가 알아서 가. 잡을 때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만, 놓을 때는 힘이 빠져. 힘을 빼는 게 잡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어.
여자아이는 그 여름에 물고기를 놓아 주는 연습을 많이 했어. 잡은 물고기를 손바닥 위에 잠깐 두고, 보고, 그러고 펴서 놓아 줬어. 잡았다가 놓는 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 잡은 걸 그냥 놓는 게, 처음에는 좀 아까웠거든. 아깝다는 마음이 사라지기까지 또 시간이 걸렸어. 여자아이는 그 여름이 끝날 무렵에야, 잡은 걸 놓는 데 아깝다는 마음이 안 드는 손을 갖게 됐어. 어머니가 그 손을 보고 말했어. 이제 다 가르쳤어. 더 가르칠 거 없어. 여자아이는 그 말을 듣고 좀 무서웠어. 어머니가 더 가르칠 게 없다는 건, 어머니가 어딘가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 같아서.
가을이 됐어. 어머니는 아직 어디로도 안 갔어. 다만 강에 나가는 시간이 줄었어. 여자아이가 거의 혼자 물고기를 잡았어. 어머니는 집에 앉아서 뭘 자주 했어. 여자아이가 잡아 오는 물고기를 손질하고, 말리고, 마을에 가져가 파는 일을 어머니가 다 했어. 어머니의 손은 손질하는 데도 빨랐어. 잡지 않을 때도 어머니의 손은 빨랐어. 어머니가 자기 손을 어떻게 다루는지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봐 왔지만, 그 가을에야 어머니의 손을 다시 천천히 봤어. 어머니의 손은 손등에 흉터가 많았고, 손가락 끝이 굳어 있었어. 물고기 비늘이 손톱 사이에 까맣게 끼어 있었어. 여자아이는 어머니의 손이 예쁘지 않다는 걸 그제야 봤어. 예쁘지 않은 손이 가장 좋은 손이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어.
그 가을의 어느 밤, 어머니가 여자아이에게 말했어. 너 윗마을에 한 번 가 봐. 여자아이가 물었어. 거긴 왜. 어머니가 말했어. 그 사람이 거기서 왔잖아. 여자아이가 잠깐 가만히 있다가 말했어. 거기 가도 그 사람 없어. 어머니가 말했어. 알아. 그래도 가 봐. 여자아이가 물었어. 왜. 어머니가 말했어. 그 사람이 왜 도망쳤는지, 그 사람이 보던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거. 한 번 보고 와. 안 봐도 사는 데는 지장 없는데, 보고 오면 좀 달라져. 여자아이는 어머니의 말을 들었어. 어머니가 가라고 하면 가는 게 맞다는 걸 여자아이는 알았어.
여자아이는 다음 봄에 윗마을에 갔어. 강을 따라 거꾸로 올라갔어. 아랫마을에 갈 때처럼 사흘 길은 아니었어. 윗마을까지는 닷새 길이었어. 강이 점점 좁아졌고, 물살이 점점 약해졌어. 윗마을 가까이 가니까 강은 거의 개울이었어. 가운데 마을에서는 큰 강이었던 게, 윗마을에서는 개울이었어. 같은 강인데 보는 자리에 따라 그렇게 달랐어. 윗마을에서 이 개울을 푸른 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여자아이는 그제야 봤어. 물이 얕고 맑아서, 정말 푸르게 보였어. 물 아래 자갈이 다 보일 만큼 맑았어.
여자아이는 윗마을에서 하룻밤만 묵었어. 마을은 작았고, 사람들은 조용했어. 누구한테 그 여자에 대해 묻지 않았어. 물을 일도 아니었어. 다만 강가에 가서 한참 앉아 있었어. 그 여자가 아마 이 자리 어디쯤에서 강에 뛰어들었을 거라고, 여자아이는 짐작했어. 강이 깊지 않아서 죽으려고 뛰어든 게 아니라는 건 명백했어. 그 여자가 말한 그대로였어. 죽으려고 한 게 아니라, 강이 어디로든 데려가 주기를 바랐던 거. 강은 정말 그 여자를 어디로든 데려갔어. 가운데 마을의 휘어지는 자리까지. 그 자리에서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그 여자를 끌어냈고, 여자아이도 같이 끌어냈고, 셋이서 한동안 살았고, 그 여자는 다시 떠났어. 그게 다였어.
여자아이는 윗마을의 강가에 손을 담갔어. 물이 차가웠어. 위쪽 강물은 더 차가웠어. 손이 떨릴 만큼 차가웠지만, 여자아이의 손은 안 떨렸어. 한참을 그렇게 손을 담그고 있었어. 물고기 한 마리가 손 옆을 지나갔어. 여자아이는 잡지 않았어. 다음 물고기가 지나갔어. 여자아이는 또 잡지 않았어. 윗마을에서는 잡을 일이 없었어. 다만 손을 거기 두고 있었을 뿐이야. 손이 거기 있다는 게, 그날 여자아이가 윗마을에서 한 유일한 일이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자아이는 어머니가 왜 자기를 윗마을에 보냈는지 어렴풋이 알았어. 그 사람이 보던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오라는 건, 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라는 게 아니었어. 같은 강이 자리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보라는 거였어. 그 여자가 윗마을에서 본 푸른 강과, 가운데 마을에서 본 빠른 강과, 아랫마을에서 본 깊은 강이 다 같은 강이지만 다 다르다는 거. 그러니까 그 여자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더라도, 그 여자가 가운데 마을에서 봤던 강은 그 여자 안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거. 어머니의 말은 그 뜻이었어. 빨래를 같이 했던 거, 물고기를 같이 손질했던 거, 너 머리 빗어 준 거, 그게 다 어디 안 가. 어디 안 가는 게 그 여자한테도 마찬가지라는 거.
여자아이는 가운데 마을로 돌아왔어. 어머니가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어머니의 손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어. 그날 어머니가 잡은 마지막 물고기였어. 어머니가 그 물고기를 여자아이에게 줬어. 여자아이가 그걸 받았어. 받은 채로, 손을 펴서 강에 다시 놓아 줬어. 어머니가 그걸 보고 한 번 웃었어. 그날 어머니의 두 번째 웃음이었어. 어머니가 잘 안 웃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두 번 웃는다는 건, 그날이 어머니에게도 좀 특별한 날이었다는 뜻이야.
그 뒤로 여자아이는 어머니랑 오래오래 살았어. 어머니가 더 늙고, 손이 더 느려지고, 나중에는 여자아이가 어머니의 머리를 빗어 주게 되는 날까지. 여자아이가 어머니의 머리를 빗을 때는 천천히 빗었어. 매듭이 생긴 자리에서 한참씩 멈췄어. 풀고, 빗고, 다시 풀고. 어머니가 그 빗질을 받으면서 잠깐 눈을 감았어. 어머니의 얼굴에 햇볕이 한 줄 들어와 있었어. 어머니가 말했어. 천천히 빗어 주는 거 좋네. 여자아이가 말했어. 그렇지. 어머니가 말했어. 좋아. 여자아이가 어머니의 머리를 다 빗고 나서,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잠깐 얹었다가 뗐어. 그게 인사였어. 어머니는 그 인사를 알았어. 다만 어머니는 어디 안 갔어. 거기 그대로 있었어. 그 인사가 무슨 뜻인지 알지만, 아직은 가지 않겠다는 얼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