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제2부: 소프런 위의 작은 새
새벽 4시의 플렉시움은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번도 잠든 적이 없었다. 형광등은 밤새 켜져 있었고, 소프런은 전날의 열기와 땀냄새를 품은 채 다음 몸을 기다렸다. 세린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공간의 공기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인사처럼 느껴졌지만, 실은 온도 차이가 만들어낸 대류일 뿐이었다. 세린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구분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달라지지 않는 것에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거울 속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어제와 같은 몸이었지만, 왼쪽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더 발달해 있었다. 균형을 맞춰야 했다. 균형이 깨지면 동작이 흐트러지고, 흐트러진 동작은 실수로 이어지고, 실수는 부상으로 끝났다. 부상은 곧 생계의 위협이었다.
테이핑을 감는 손길이 익숙했다. 손목, 발목, 때로는 무릎. 흰색 테이프가 피부에 달라붙는 순간의 차가움, 그리고 체온에 의해 서서히 따뜻해지는 과정.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세린의 의식도 함께 깨어났다. 완전히 깨어난다는 것은 몸의 모든 부분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는 뜻이었다. 발가락 하나하나가 소프런을 느끼고, 손가락 관절이 공기의 저항을 인식하고, 척추의 각 마디가 중력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 그 시간이 끝나면 비로소 훈련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윤이 도착했다. 언제나 세린보다 10분 늦었지만, 그것도 일종의 정확성이었다. 하윤은 말없이 세린 옆에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 없었다. 몸의 언어로 충분했다. 하윤이 오른쪽 다리를 들어올릴 때, 세린은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췄고, 세린이 브릿지 자세를 취할 때, 하윤은 등을 받쳐주었다. 그 접촉에는 친밀함이 있었지만, 친밀함을 의식하는 순간 그것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하지 않았다. 대신 근육의 떨림과 호흡의 리듬에만 집중했다. 하윤의 호흡은 세린보다 짧고 얕았다. 폐활량의 차이였지만, 때로는 감정의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윤은 더 많이 걱정하고, 더 자주 불안해했다. 세린은 그것을 알았지만 언급하지 않았다. 언급하는 순간, 불안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민석 코치가 들어왔다. 발소리만으로도 그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반 박자 빠른 걸음이었다. 대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3주 후, 그랜드 컨플루언스. 세린에게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나이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고, 후배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민석 코치는 그것을 알았고, 세린도 알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달랐다. 민석 코치는 트윈릭 앞에 섰다. 세린, 기본기부터. 그 한 마디에는 여러 층의 의미가 있었다. 기본기는 단순히 기초 동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자, 완벽을 향한 강박이자, 동시에 일종의 위로였다. 기본기가 탄탄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오래된 믿음.
트윈릭을 잡는 순간, 세계가 단순해졌다. 오직 두 개의 봉과 그 사이의 공간, 그리고 중력. 그것이 전부였다. 세린의 몸이 봉 위로 올라갔다. 물구나무서기 자세에서 정지. 이 순간, 시간도 멈춘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근육의 미세한 조정, 혈액의 역류를 막기 위한 심장의 분투,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내이의 작동. 정지는 사실 수많은 움직임의 균형이었다. 그 균형 속에서 세린은 이상한 자유를 느꼈다.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중력으로부터의 일시적 해방. 물론 그것은 환상이었다. 중력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고, 오히려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강한 압력에 저항하는 순간의 긴장감이 세린을 살아있게 했다.
발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확히 1도. 규정된 각의 크기에서 벗어났다. 민석 코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발끝! 그러나 세린은 그 1도를 수정하지 않았다. 수정할 수 없었다. 그 1도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이 스스로 찾아낸 각이었다. 더 자연스럽고, 더 편안한 각의 크기. 물론 규정에는 어긋났다. 심판은 감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세린은 심판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몸과 봉 사이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그 대화 속에서 1도의 일탈은 필연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 동안, 뜨거운 물이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하윤이 옆 칸에서 콧노래를 흘렸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멜로디가 애잔했다. 세린은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노래를 부르면 감정이 드러났고, 감정이 드러나면 약해졌다. 약해질 여유가 없었다. 저녁 알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닉토 시프트. 시급 0000원. 한 달이면 겨우 월세와 식비를 감당할 수 있는 돈. 플렉소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상금이 나오는 대회는 1년에 몇 번뿐이었고, 그마저도 상위권에 들어야 했다.
지민이 탈의실로 들어왔다. 세린보다 다섯 살 어렸지만, 이미 국가대표 후보였다. 지민의 몸에는 상처가 없었다. 아직 젊었고, 회복이 빨랐다. 세린의 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각각의 흉터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패한 착지, 놓친 봉, 찢어진 인대.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다. 지민이 물었다. 언니,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은지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태도였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로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플렉시움을 나서는 길에 세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형광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새어나왔다. 그 빛 속에서 누군가 여전히 훈련하고 있을 것이다. 끝없는 반복. 완벽을 향한 집착. 그것이 플렉소였다. 세린의 발걸음이 멀어질수록, 플렉시움의 불빛도 작아졌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망막에 잔상처럼 남아, 닉토마트까지 가는 내내 따라왔다.
닉토마트는 플렉시움과는 다른 종류의 형광등 아래 있었다. 더 차갑고, 더 하얗고, 더 무자비한 빛. 그 빛 아래서 모든 것이 상품이 되었다. 세린도 상품의 일부였다. 시간을 팔고, 노동을 팔고, 때로는 웃음도 팔았다. 손님이 오면 반갑게 인사하고, 계산을 하고,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했다. 그 모든 과정이 매뉴얼에 정해져 있었다. 플렉소의 동작 규정처럼. 그러나 여기서는 1도의 일탈도 허용되지 않았다. 일탈은 곧 클레임이었고, 클레임은 해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새벽 2시, 취객이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음료수 코너로 갔다. 세린은 긴장했다. 취객은 예측할 수 없었다. 때로는 조용히 물건을 사고 나가지만, 때로는 시비를 걸었다. 세린의 몸은 자동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플렉서의 본능이었다. 균형을 잡고, 무게중심을 낮추고,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다행히 취객은 물만 사고 나갔다. 세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 속에 하루의 피로가 모두 담겨 있었다.
렉스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플렉시움이 떠올랐다. 트윈릭의 차가운 감촉, 소프런의 푹신함, 공중에서의 짧은 비행. 그리고 그 1도의 일탈. 왜 자꾸 그것이 생각나는가. 1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360도 중의 1도. 0.27%의 오차. 그러나 그 작은 오차가 만들어낸 감각은 선명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느낀 것 같은, 그런 감각.
닉토마트 문이 열렸다. 센서가 울렸다. 딸랑딸랑. 그 소리가 작은 새의 울음처럼 들렸다. 세린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떠올렸다. 노래하는 작은 새. 그러나 세린은 노래하지 않았다. 노래할 수 없었다. 대신 정해진 멘트를 반복했다.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그 반복 속에서 세린은 조금씩 마모되고 있었다. 플렉시움에서의 반복은 성장을 위한 것이었지만, 여기서의 반복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 차이가 세린을 지치게 했다.
새벽 5시,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 알바생이 도착했다. 인수인계를 하고 닉토마트를 나섰다.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첫 번째 버스가 지나갔다. 세린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걸어서 집까지 30분. 버스비를 아껴야 했다. 걷는 동안, 발걸음이 리듬을 만들었다. 그 리듬이 플렉소 동작의 박자와 비슷했다. 도약, 착지, 회전. 모든 동작에는 고유한 리듬이 있었다. 그 리듬을 잃으면 동작도 무너졌다. 인생도 마찬가지일까. 리듬을 잃으면 무너지는 것일까.
집에 도착했을 때,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빛이 방을 비췄다. 작은 원룸. 싱크대, 침대, 옷장이 전부인 공간. 그러나 그곳은 세린의 성소였다. 유일하게 긴장을 풀 수 있는 곳.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았다. 천장에는 얼룩이 있었다. 비가 샜던 흔적. 그 얼룩이 지도처럼 보였다. 어딘가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 그러나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이 들기 전, 세린은 다시 그 1도를 생각했다. 발끝이 만들어낸 작은 일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원했던 것. 규정 밖의 자유. 그 자유가 무엇을 가져올지 알 수 없었지만, 세린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되었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대. 다시 트윈릭을 잡을 때, 그 1도가 2도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시 0도로 돌아갈지도. 그것은 그 때의 몸이 결정할 일이었다. 세린은 눈을 감았다. 꿈속에서 날고 있었다. 작은 새처럼. 노래하지 않는 새. 그러나 날 수 있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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