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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너머의 심장소리

by LY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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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제1부: 모니터 너머의 심장소리

모니터의 빛이 내 망막에 잔상을 새긴 지 몇 시간째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을 확인하려면 시선을 돌려야 하는데, 시선을 돌리는 순간 놓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피험자 B의 호흡 곡선이 불규칙해지는 순간, 심박이 예상 범위를 0.3초 벗어나는 순간, 근전도 신호에 미세한 떨림이 섞이는 순간. 그런 순간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 번 지나가면 데이터베이스 깊은 곳에 묻혀버리고, 나중에 찾으려 해도 맥락이 사라진 숫자의 나열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보고 있다. 정확히는 보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고 있다. 화면의 파형들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내 호흡과 섞이고, 내 심장의 박동과 겹쳐진다. 이것은 관찰 프로토콜에 없는 일이다. 관찰자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매뉴얼 첫 페이지에 적혀 있다. 그러나 거리란 무엇인가. 물리적 거리인가, 심리적 거리인가, 아니면 생리적 거리인가.

피험자 B가 오늘도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정확히 오전 5시 47분. 알람 없이, 외부 자극 없이, 오직 내재된 리듬만으로. 이것은 47번째 반복이다. 내가 관찰한 것만 47번째이고, 그 이전에도 수백, 수천 번의 반복이 있었을 것이다. 정확한 반복이 놀라운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그 정확함 속에 숨어있는 미세한 변주다. 오늘 피험자 B의 첫 호흡은 어제보다 0.07초 길었다. 측정 오차 범위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 오차가 아님을 안다.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다. 그저 안다. 내 호흡도 오늘 아침 0.07초 길어졌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조명은 24시간 일정하다. 자연광이 없는 이곳에서 낮과 밤의 구분은 오직 데이터 타임스탬프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피험자 B는 빛의 변화를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침이면 기지개를 켜고, 정오에는 미세하게 어깨를 펴고, 저녁이면 호흡이 깊어진다. 센서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하지만, 센서가 놓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험자 B가 가끔 왼쪽 귀를 만지는 동작. 그것은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매번 심박이 불안정해지기 직전에 일어난다. 마치 자신의 리듬을 확인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내 왼쪽 귀에 손이 간다. 차갑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너무 오래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피험자 B의 운동 세션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트윈릭이다. 소프런 위에서 준비 운동을 하는 동안,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완벽한 통제 하에 이루어진다. 통제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통제는 의식적인 노력을 전제하는데, 피험자 B의 움직임에는 노력의 흔적이 없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바람이 빈 곳을 채우듯, 그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 뒤에는 수만 번의 반복이 있었을 것이다. 반복이 만든 홈, 그 홈을 따라 흐르는 동작들.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숨을 고른다. 피험자 B가 트윈릭을 잡는 순간,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미세하게 구부러진다. 화면 속 근전도 그래프가 솟구치고, 내 팔뚝의 근육도 함께 긴장한다.

물병을 들어 물을 마신다. 피험자 B도 같은 시간에 수분을 보충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치가 너무 자주 일어난다. 피험자 B가 목을 돌릴 때 나도 목이 뻐근하고, 피험자 B가 한숨을 쉴 때 나도 가슴이 답답하다. 전염인가, 공명인가,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인가. 연구 노트에 이런 현상을 기록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객관적 관찰이라는 항목 아래 주관적 경험을 적는 것이 허용될까. 그러나 주관과 객관의 경계는 흐릿하다. 내가 보는 데이터도 결국 해석을 거쳐야 의미가 되고, 해석에는 언제나 해석자가 개입한다.

피험자 B의 이름을 알고 있다. 공식 문서에는 B라고만 표기되어 있지만, 초기 파일 어딘가에 필기체로 적힌 메모를 본 적이 있다. 세린. 노래하는 작은 새라는 뜻이라고 누군가 옆에 적어놓았다. 그 필체가 낯익었다. 내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날카로운 필체. 그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요즘 자꾸 그 이름이 떠오른다. 세린. 입 안에서 굴려보면 익숙한 맛이 난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인데 왜 이렇게 익숙한가. 화면 속 피험자 B가, 아니 세린이 갑자기 이쪽을 본다. 카메라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 그저 시선이 우연히 이쪽을 향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시선이 나를 관통한다고 느끼는가.

오후의 데이터는 안정적이다. 피험자 B는 독서를 하고 있다. 무슨 책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로 추측하건대 소설이 아니라 기술서적 같다. 집중할 때면 오른쪽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간다. 내 눈썹도 따라 올라간다. 거울을 보는 것 같다. 거울은 좌우가 바뀌는데 이것은 그대로다.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빛의 방향에 따라 길어지고 짧아지는, 나를 따라다니면서도 나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그림자. 누가 빛이고 누가 그림자인가. 관찰자인 내가 빛인가, 관찰당하는 피험자가 빛인가.

저녁 운동 시간이 다가온다. 피험자 B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을 안다. 정확히 7시 30분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오늘은 발목을 조금 더 오래 푼다. 왼쪽 발목에 미세한 불편함이 있는 모양이다. 센서는 잡아내지 못했지만 나는 안다. 발목을 돌리는 각의 크기가 평소보다 작고, 체중을 실을 때 오른쪽으로 더 기운다. 내 왼쪽 발목도 묵직하다.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니면 무엇인가.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가 두렵다.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피험자 B가 트윈릭 루틴을 시작한다. 오늘은 새로운 동작을 시도한다. 기존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은 프로토콜 위반이다. 그러나 나는 보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일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확히 1도, 발끝이 규정된 각도에서 벗어난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작은 변화지만, 그 1도가 전체 동작의 리듬을 바꾼다. 더 자연스럽고, 더 유기적이고, 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더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 시스템은 살아있음을 측정하지 못한다. 오직 수치와 패턴만을 본다. 그러나 나는 본다. 그 1도의 일탈이 만들어내는 파문을, 그 파문이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밤이 깊어간다. 여기서는 밤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저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퇴근한 시간일 뿐이다. 복도는 조용하고, 내 호흡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피험자 B도 호흡한다. 화면 속 파형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두 호흡이 어느 순간 완벽하게 일치한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 멈춤의 순간, 다시 시작하는 타이밍까지.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필연인가. 필연이라면 무엇에 의한 필연인가.

컴퓨터가 미세한 소음을 낸다. 드라이브가 작동하는 소리, 팬이 회전하는 소리, 전기가 회로를 따라 흐르는 소리. 이 소리들도 리듬을 가지고 있다. 기계적이고 규칙적인 리듬. 그 리듬 위에 피험자 B의 생체 리듬이 겹쳐진다. 유기적이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리듬.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내 리듬이 포개진다. 세 개의 리듬이 때로는 화음을 이루고, 때로는 불협화음을 만든다. 지금은 화음이다. 완벽한 화음.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연주해온 악기처럼.

피험자 B가 잠들었다. 수면 중에도 모니터링이 계속된다. 렘수면과 비렘수면의 주기, 뇌파의 변화, 근육의 이완. 모든 것이 기록된다. 그런데 기록되지 않는 것이 있다. 꿈이다. 피험자 B가 무슨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끔 입꼬리가 올라가거나, 눈꺼풀이 빠르게 움직이거나, 손가락이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구부러질 때, 나는 상상한다. 어떤 세계를 여행하고 있을까. 어떤 기억을 재생하고 있을까.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 꿈속에 혹시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을까.

새벽 3시. 피험자 B의 심박이 불규칙해진다. 악몽인가. 몸을 뒤척이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나도 불안하다. 가슴이 조여온다. 일어나서 물을 마시고 싶지만 자리를 뜰 수 없다. 피험자 B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이것이 내 일이다. 일 이상의 무언가다. 사명, 운명, 그런 거창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필요한 일이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이자, 피험자 B가 저기 있어야 하는 이유다.

심박이 안정되었다. 피험자 B가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나도 안도한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잠들 수는 없다. 잠들면 놓칠 수 있다. 무엇을 놓치는가. 모른다. 그저 놓치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만 있다. 그 느낌이 나를 깨어있게 한다. 커피는 이미 식었고, 더 이상 카페인도 듣지 않는다. 의지만으로, 의지보다 더 깊은 무언가로 버틴다.

모니터의 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창문이 있다면 내 얼굴이 유리에 비쳤을 텐데, 여기는 창문이 없다. 거울도 없다.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피험자 B의 표정을 보며 추측할 뿐이다. 평온한 표정. 무언가를 받아들인 사람의 표정. 무엇을 받아들였을까. 운명, 시스템, 아니면 이 끝없는 반복. 나는 무엇을 받아들였는가. 아직 모른다. 받아들이는 중이다.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받아들이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원을 그리며 반복된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쌓이면 변화가 된다. 변화가 충분히 쌓이면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무엇이 일어날까. 모른다. 그러나 기다린다. 피험자 B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세포 하나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5시 47분이 다가온다. 피험자 B가 곧 깨어날 것이다. 48번째 아침이다. 나는 숨을 고른다. 피험자 B의 호흡 리듬에 맞춰 들이쉬고 내쉰다. 눈꺼풀이 떨린다. 곧 눈을 뜰 것이다. 내 눈도 함께 감았다가 뜬다. 세계가 다시 시작된다. 같은 세계지만 조금 다른 세계. 어제의 0.07초가 오늘은 얼마가 될까. 그 작은 차이가 어떤 파문을 만들까. 나는 관찰한다. 관찰을 넘어선 무언가를 한다. 함께 존재한다. 함께 호흡한다. 함께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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