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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 들어오는 빛

by LY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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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 들어오는 빛.

문 아래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복도의 형광등 불빛인지, 창문으로 들어온 차가운 햇빛인지 알 수 없다. 그저 희미한 선이 마룻바닥에 그어져 있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 그 빛을 본다. 천장을 보다가, 벽을 보다가, 다시 문 아래 빛을 본다. 몇 시간째일까. 아니, 며칠째일지도 모른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복도를 걷는 누군가의 발소리. 멀리서, 점점 가까이. 문 앞에서 멈춘다. 빛을 가리는 두 개의 그림자. 발. 누군가 문 밖에 서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건 안다. 문고리가 달그락거릴까 봐 긴장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노크도 없다. 부르는 소리도 없다. 그저 서 있을 뿐이다.

나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막힌 것처럼, 혹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는다. 하지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이불을 뚫고 내게 닿는 것 같다. 붉은빛을 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존재.

시간이 흐른다. 문 밖의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가끔 무게중심을 옮기는 소리가 난다. 한 발에서 다른 발로. 지쳐가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내가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내가 소리내기를 기다리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거기 서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일까.

문득 그 사람도 나처럼 문을 열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고리를 잡았지만 돌릴 수 없는. 들어오고 싶지만 들어올 수 없는. 우리는 문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빛이 흔들린다. 문 밖의 사람이 움직인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대신 한 걸음 물러난다. 또 한 걸음. 발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복도 끝으로, 계단으로, 어딘가로. 빛은 다시 고요해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는 이불에서 나와 문을 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일어나 걸어가면 열 수 있는 문.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고 싶지 않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무언가가 끝날 것 같다. 혹은 시작될 것 같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상태가 더 안전하다.

방 안에 내가 쌓아놓은 물건들. 뜯지 않은 상자, 켜지 않은 전등, 뜯지 않은 과자 봉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물건들이 나를 여기 붙들어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기꺼이 붙들려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작은 위로였지만 이제는 전부가 되어버린.

문틈 아래 빛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밤이 와도 꺼지지 않는 복도의 불빛처럼. 누군가 다시 올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기 있을 것이다. 문은 끝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12월의 풍경이다. 끝인지 시작인지 모를 정지된 시간.

마지막 메시지.

화면에 커서가 깜빡인다. 오늘은 안 와도 돼요. 여덟 글자. 너무 차갑다. 지운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여덟 글자. 거짓말이다. 어디로 나간단 말인가. 이것도 지운다. 커서만 남는다. 깜빡, 깜빡. 마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다.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메시지 알림. 전화 알림. 또 진동. 읽지 않는다. 누구인지는 안다. 무엇을 묻는지도 안다. 괜찮냐고, 밥은 먹었냐고, 왜 연락이 없냐고. 늘 같은 질문.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다시 메시지 창을 연다. 조금 있다가 연락할게. 아니다. 피곤해서 일찍 잘 거야. 이것도 아니다. 병원에 다녀왔어. 거짓말은 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진실을 쓸 수도 없다. 요즘 내가 이상해. 나도 나를 모르겠어. 도와줘. 이런 말들은 너무 무겁다.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창밖이 어두워진다. 하루가 또 지나간다. 메시지 창은 여전히 비어있다. 몇 시간째 같은 화면이다. 가끔 자동으로 꺼졌다가 다시 켜진다. 그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쓸 말은 없다.

예전엔 자연스럽게 했던 일들. 아침에 일어나서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점심시간에 먹은 걸 사진찍어 보내고, 집에 가는 길에 하늘을 찍어 보내고, 자기 전에 내일 만나자고 약속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메시지 하나 보내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일이 됐을까.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다. 화면이 보이지 않게. 하지만 진동은 느껴진다. 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떨림. 한 번, 두 번, 세 번. 누군가 나를 찾고 있다. 나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걱정이 부담스럽다. 무섭다. 걱정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 휴대폰을 이불 속에 넣는다. 진동 소리가 작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들린다. 마치 갇힌 벌레 소리처럼. 살려달라고, 꺼내달라고 울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꺼내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꺼내지 않을 것이다.

며칠 후면 진동도 멈출 것이다. 배터리가 닳거나, 연락을 포기하거나. 그때가 되면 정말로 혼자가 되는 걸까. 아니면 이미 혼자인 걸까. 보내지 않은 메시지가 내 안에 쌓여간다. 하고 싶었던 말, 할 수 없었던 말. 점점 무거워진다. 목구멍을 막는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이모티콘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응, 그래 같은 짧은 대답이었을 수도.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알았다면 다른 말을 했을까. 아니다. 어차피 모든 마지막은 예고 없이 온다. 지금 이 순간도 무언가의 마지막일지 모른다.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하지만 나는 여전히 빈 화면만 보고 있다. 커서가 깜빡인다. 깜빡, 깜빡. 심장은 아직 뛰고 있다는 증거처럼.

거울을 돌려놓은 날.

세면대 거울을 돌려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세수를 하다가 문득 거울 속 얼굴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게 내 얼굴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울을 돌렸다. 거울 뒷면의 나무가 보이니 마음이 편했다. 촉감으로만 세수를 했다. 물의 온도와 비누 거품의 감촉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은 현관 거울이었다. 외출 전 매무새를 확인하던 거울. 이미 몇 주째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필요 없었다. 무거운 거울을 끌어서 벽 쪽으로 돌렸다. 얼룩진 뒷면이 드러났다.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사 올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매일 거울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를 정돈하고, 미소를 연습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화장대 거울은 수건으로 덮었다. 돌리기엔 너무 무거웠고, 떼어내기엔 벽에 흔적이 남을 것 같았다. 큰 목욕 수건으로 덮으니 마치 초상집 같았다. 누군가 죽었을 때 거울을 가리는 것처럼. 어쩌면 맞는 비유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는 확실히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창문에 비치는 모습도 신경 쓰였다. 밤이 되면 유리창이 거울처럼 변한다. 실내 불빛에 비친 희미한 실루엣. 그것마저 보기 싫어 커튼을 쳤다. 낮에도 커튼을 열지 않았다. 햇빛이 필요한가. 어차피 시간의 감각도 잃어가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 숟가락에 비친 일그러진 얼굴, 검은 화면에 반사된 흐릿한 형체, 물 컵 바닥에 맺힌 작은 상.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낯선 사람을 마주친 것처럼. 너무나 익숙한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본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며 보름이 지났을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매가 어땠더라. 코는 어떤 모양이었지. 입술은 두꺼웠나 얇았나. 마치 아주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희미했다.

그게 편했다. 얼굴이 없으니 표정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감각만 남았다.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 추위. 동물적인 것. 생존 감각.

가끔 궁금했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지만 그 궁금증은 두려움으로 변하곤 했다. 만약 거울을 본다면, 그곳에 정말 내가 있을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서 있을까. 혹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을까. 그래서 거울은 계속 돌려놓은 채로 두었다.

실수로 휴대폰 전면 카메라가 켜진 순간이 있었다. 화면에 비친 얼굴.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그게 나였을까. 창백하고 낯선 얼굴이. 눈만 크게 뜬 채 나를 보고 있던 그것이. 그날 전면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였다.

이름 없는 수신자.

택배 기사님이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순간 멈칫했다. 내 이름이 뭐였더라. 알고 있다. 다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놓고 가주세요. 기사님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왔던 사람이니까. 처음엔 이름을 확인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냥 놓고 가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며 받는 사람에 아무 이름이나 쓴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이름을 쓰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렸는데, 첫 글자를 치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정말 내 이름인가. 이 글자의 조합이 나를 나타내는가. 그래서 지웠다. 아무 글자나 썼다. 주소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주문이 취소되지 않았고, 택배는 정확히 도착했다. 아무 이름의 상자. 하얀 송장에 주소만 적힌 채로. 마치 유령에게 보내는 소포 같았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투명해지고 있으니까.

상자가 쌓여갔다. 현관 한쪽 벽을 따라 작은 탑처럼. 뜯지 않았다. 무엇을 주문했는지 기억나는 것도 있고, 기억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왔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는 증거. 비록 이름은 모르지만, 이 주소에 사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러 왔다는 것.

가장 이상한 건 신용카드 청구서였다. 거기엔 여전히 내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세 글자. 너무나 낯설었다. 이게 나라고? 이 사람이 이 모든 것들을 샀다고? 믿기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청구서를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금액은 정확했다. 내 이름‘들’의 총합.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내?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누구더라.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이더라. 직업도,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모두 흐릿해졌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전화 너머로는 보이지 않는 미소. 잘 지내,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이름을 잃어버리니 다른 것도 따라서 사라졌다. 내가 졸업한 학교, 다녔던 회사, 만났던 사람들. 모두 이름과 함께 묶여 있던 것이었다. 이름표를 떼니 함께 떨어져 나갔다. 가벼워졌다. 텅 비었다.

어느 날 택배 상자를 하나 열었다. 충동적으로.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도 주인이 없구나. 이름 모를 사람이 산, 이름 없는 물건. 우리는 서로에게 딱 맞는 존재였다.

나는 더 이상 주문을 하지 않았다. 이름을 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쓰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라, 그저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이름 없는 것들이. 주인 없는 것들이. 나처럼.

달력의 숫자들.

달력을 들여다본다. 빨간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검은 엑스표. 내가 그린 표시들이 분명한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8월 3일에는 느낌표가 세 개나 그려져 있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병원 예약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생일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 무언가를 결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종이 위의 잉크 자국일 뿐이다.

가장 이상한 날은 8월 15일이다. 별이 그려져 있다. 다섯 개의 꼭짓점을 정성스럽게 이은 별. 다른 표시와 달리 시간을 들여 그린 흔적이 역력하다. 광복절이라서? 아니다. 그런 것에 별을 그릴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손가락으로 그 날짜를 짚어본다. 종이의 감촉뿐이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핸드폰 캘린더를 확인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거기엔 더 많은 일정이 있을 것이다. 알림을 꺼놓아서 울리지 않을 뿐, 빼곡히 차 있을 약속. 치과, 미용실, 친구와의 저녁, 요가 수업. 한때는 그런 것으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구조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척했다.

이제는 날짜 자체가 의미를 잃었다. 오늘이 며칠인지도 달력을 보기 전엔 모른다. 봐도 모른다. 8월 20일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여름의 끝자락? 한 달의 3분의 2 지점? 그런 구분이 무슨 소용인가. 해는 뜨고 지고, 나는 깨어있다가 잠들고, 그것이 반복될 뿐이다.

동그라미를 그린 날을 다시 센다. 열두 개. 왜 하필 열두 개일까. 규칙적인 간격도 아니다. 어떤 날은 연달아 표시되어 있고, 어떤 주는 텅 비어있다. 마치 암호 같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하지만 풀어낼 열쇠를 잃어버렸다.

문득 깨닫는다. 이 표시가 약속이 아니라 기록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무언가를 한 날. 아니, 무언가를 견딘 날. 빨간 동그라미는 힘든 날, 파란 동그라미는 조금 나은 날, 검은 엑스는 포기한 날. 그렇다면 별은? 8월 15일의 별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좋았던 날? 가장 나빴던 날? 아니면 무언가가 시작된 날?

창밖으로 8월의 끝이 보인다. 아직 덥지만 바람은 달라졌다. 계절은 달력과 상관없이 흐른다. 내가 날짜를 잊어도, 동그라미, 엑스, 별 표시가 의미를 잃어도, 시간은 제 갈 길을 간다. 그게 위안이 될 때도 있고, 공포가 될 때도 있다. 멈출 수 없다는 것.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새 달력을 사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다음 달에도 표시를 할까.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잊어가고 있다. 약속도, 기념일도, 의미도. 곧 날짜마저 잊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시간 자체를 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매일이 똑같은 날이 될 것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하루. 어쩌면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달력을 벽에서 떼어낸다. 뒤집어서 서랍에 넣는다. 8월 15일의 별이 마지막으로 보인다. 언젠가 이 서랍을 열 누군가는 이 별의 의미를 궁금해할까. 하지만 그때는 나도 없고, 이 별을 그린 이유도 영영 사라진 뒤일 것이다. 모든 표시는 결국 무의미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낯선 사람의 카드.

지갑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평소 쓰지 않는 카드 슬롯에 끼워진 신용카드. 은색 바탕에 검은 글씨. 내 것이 맞나 싶어 이름을 확인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성은 같은데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하나 바뀌어 있다. 김민아가 아니라 김민하. 한 글자 차이. 펜으로 쓰다가 실수한 것처럼 미묘한 차이.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다. 본인인증을 하고 로그인하니 카드 번호가 내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 화면에 뜬 내역들을 보며 숨이 막혔다. 이게 정말 내가 쓴 것인가. 국립현대미술관, 을지로 화방, 교보문고 광화문점, 성수동 꽃집, 혜화동 극장. 한때 자주 가던 곳들. 아니, 한때 가고 싶어 했던 곳들.

날짜를 확인했다.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때 나는 분명 집에만 있었는데. 아니다, 정말 그랬을까. 기억이 흐릿하다. 혹시 내가 나가서 이런 곳을 다녔을까. 그런데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로 다른 사람의 카드일까. 이름이 비슷한 다른 누군가의.

금액도 이상했다. 미술관 입장료 정확히 8천원. 꽃집에서 3만 2천원. 서점에서 6만 7천원. 소극장 티켓 4만원.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일상적인 금액. 마치 평범한 주말을 보내는 사람의 지출 같았다. 여유롭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사람. 그게 나였을까.

카드의 사인란을 다시 봤다. 희미하게 닳은 서명. 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획의 시작은 비슷한데 끝이 다르다. 서두르다가 대충 끝낸 것처럼.

이 카드의 주인은 행복했을까. 토요일 오후에 미술관을 거닐고, 마음에 드는 꽃을 사고,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저녁엔 연극을 보러 가는 사람. 그런 일상이 가능했던 사람. 집으로 돌아와서는 오늘 하루를 일기에 적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그날 본 것을 이야기했을까.

지갑에 카드를 다시 넣으려다가 뒷면에 작게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잊지 말 것.” 내 글씨다. 무엇을 잊지 말라는 걸까. 이 카드의 존재를? 이 카드로 살 수 있는 것을? 아니면 이 카드의 주인이었던 시절을?

결국 카드를 원래 자리에 다시 넣었다. 언젠가 또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때도 나는 놀랄까. 아니면 그때는 아예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것이 낯설어진다. 내 이름도, 내 얼굴도, 내 삶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처럼.

이번 달이 끝나간다. 달력에 표시를 할까. 오늘을 무슨 색으로 칠할까. 오늘도 그저 지나가는 날이 될까. 낯선 사람의 카드를 가진 채로, 나는 또 하루를 보낸다. 내 것인지 아닌지 모를 시간을.

목소리를 잃은 날.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다. 화면에 뜨는 이름을 보고도 받지 않는다. 세 번째 신호음에서 멈춘다. 곧 문자가 온다. “전화 좀 받아. 목소리가 듣고 싶어.”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머뭇거린다. 감기에 걸렸어요. 목이 아파서 말을 못해요. 거짓말이다. 하지만 완전한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말한 게 언제였더라. 편의점에서 봉투 주세요, 라고 했던가. 아니다, 그때도 그냥 손짓으로 표현했다. 그럼 그 전은?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선명한 순간이 없다. 혼잣말조차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요리를 할 때도. 예전엔 혼자 있을 때 더 많이 떠들었는데.

목을 만져본다. 아프지 않다. 부어있지도 않다. 물을 마셔본다.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런데 왜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을까. 아니,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내고 싶지 않은 걸까. 말이란 게 너무 무거워졌다. 한 마디를 내뱉으면 그 뒤에 따라올 것이 무섭다. 대화, 설명, 이해, 오해, 변명, 위로. 그 모든 것이.

문자는 다르다. 시간을 들여 쓸 수 있고, 지울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다. 이모티콘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즉각적이지 않다. 목소리처럼 떨리지 않는다. 울음이 섞이지 않는다. 감정이 배어나지 않는다. 깨끗하고 정돈된 글자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목소리를 원한다. 친구가 전화를 건다. “문자만 하지 말고 가끔은 통화도 하자.” 나는 계속 핑계를 댄다. 목감기, 성대결절, 후두염. 병명도 점점 심각해진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걱정하고, 나는 더 깊이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꿈을 꿨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소리 대신 물이 쏟아져 나왔다. 투명한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물은 바닥을 적시고, 발목까지 차올랐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목이 막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물이 차 있는 것처럼.

침묵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침묵만이 가능해졌다. 가끔 목소리를 내보려고 입을 열지만 정말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성대가 굳어버린 것처럼. 잊어버린 것처럼.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어떻게 말을 하는지. 그것도 하나의 기술이었구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거울 앞에서 입모양으로 말해본다. 안녕. 입술이 움직인다. 하지만 소리는 없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모든 말이 무성영화처럼 소리 없이 흩어진다. 슬프지 않다. 안도감이 든다.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창밖으로 장마가 시작되는 소리가 들린다. 빗소리가 들린다. 바람 소리, 천둥소리도 들린다. 다만 내 목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목소리라는 것이. 나라는 것이. 그저 있다고 믿었을 뿐.

타인의 일기.

서랍을 정리하다가 노트를 발견했다. 연두색 표지의 작은 수첩. 먼지가 쌓여있지 않은 걸 보니 최근까지 썼던 모양이다. 첫 장을 펼쳤다. 내 글씨다. 동그랗게 말린 이응과 삐뚤어진 히흗. 틀림없는 내 필체. 그런데 내용이 낯설다.

“3월 12일. 오늘은 정말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창문을 열었더니 봄 냄새가 났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점심엔 좋아하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완벽한 알덴테였다!”

느낌표까지 그어가며 쓴 문장들. 이게 정말 내가 쓴 문장인가. 날짜를 다시 확인한다. 3월 12일. 두 달 전이다. 겨우 두 달. 그런데 왜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까. 춤을 췄다고? 노래를 불렀다고? 파스타의 알덴테를 외쳤다고?

페이지를 넘긴다. 또 다른 행복이 스며 있다. “오늘 산책하다가 예쁜 고양이를 봤다. 야옹 하고 인사를 했더니 다가와서 다리에 몸을 비볐다.” “친구가 보내준 사진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배가 아플 정도로.” “처음 가본 제과점에서 크로아상을 샀는데 정말 맛있었다. 버터 냄새가 가득 퍼졌다.”

작은 기쁨으로 채워진 일상적인 순간의 기록. 그런데 왜 이렇게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행복했던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 같은.

다음 달로 넘어가면서 문장이 짧아진다. “오늘도 괜찮았다.” “그럭저럭.” “별일 없음.” 5월 초가 되자 날짜만 적혀있고 내용은 비어있다. 5월 3일, 5월 4일, 5월 5일. 숫자만 나열된 페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어서 쓸 게 없었던 걸까.

가장 최근 날짜는 5월 7일이다. 단 한 줄만 적혀있다. “나는 누구였더라” 물음표도 없이 그냥 끝난 문장. 내가 쓴 것이 맞다. 필체도, 펜의 두께도 모두 내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진 사람이 나였는지 확신할 수 없다.

일기장을 덮는다. 다시 서랍에 넣는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계속 맴돈다. “나는 누구였더라” 과거형이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였는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질문. 되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회상.

며칠 후 다시 일기장을 꺼내본다. 혹시 내가 쓴 게 아닐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여전히 내 글씨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3월의 행복했던 날이. 그 사람은 정말 나였을까. 음악을 틀고 춤을 추던 사람.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던 사람. 크로아상의 버터 냄새에 행복해하던 사람.

아니면 연기였을까. 행복한 척, 괜찮은 척. 일기장에라도 그렇게 써놓으면 진짜가 될 줄 알았던 걸까. 하지만 3월의 글씨는 너무나 경쾌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필체가 아니다. 정말로 그 순간에는 행복했던 것 같다. 단지 그 행복이 너무 가벼워서, 너무 작아서, 기억에 남지 않았을 뿐.

이제 일기를 쓰지 않는다. 쓸 것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또 누군가처럼 느껴질 글을 남기고 싶지 않다. 차라리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낫다. 흔적도, 기록도, 증거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진 맛.

아침에 커피를 마신다. 뜨거운 액체가 목으로 넘어간다. 그뿐이다. 쓴맛도, 고소한 향도 없다. 설탕을 넣어본다. 달라지는 게 없다. 우유를 부어본다. 색은 연해지지만 맛은 여전히 없다. 그저 미지근한 액체를 삼키고 있을 뿐이다.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빨갛게 끓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울 것 같은데, 입에 넣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김치의 신맛도, 고추의 매운맛도, 돼지고기의 감칠맛도. 온도와 질감만 남았다. 뜨겁고 부드러운 무언가를 씹고 삼킨다. 배가 부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엔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피곤해서, 날씨 때문에. 늘 그런 핑계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맛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냉장고를 연다. 반찬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엄마가 가져다준 것들. 맛있게 먹으라고, 골고루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며 놓고 간 것들. 멸치볶음, 장조림, 나물무침. 하나씩 맛을 본다. 짜고, 달고, 고소했을 것들. 하지만 모두 같다. 무미하다.

기억을 더듬어 좋아했던 음식을 떠올려본다. 치즈케이크의 부드러운 달콤함, 짜장면의 짭짤하고 단 조화, 여름 수박의 시원한 단맛, 갓 구운 빵의 고소함. 분명히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맛을 선명하게 상상하기 힘들다. 단어로만 남은 감각들.

병원에 가야 하나 생각한다. 미각 상실. 그런 병명이 있을 것이다. 원인을 찾고,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까. 하지만 가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맛있는 것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으니까.

식사가 단순해진다. 밥, 김치, 계란. 영양소만 생각한다. 탄수화물, 비타민, 단백질. 기계적으로 섭취한다.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살기 위해 먹는다. 그 뿐이다.

친구가 맛집에 가자고 한다. 새로 생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크림 파스타가 정말 맛있다고. 나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안, 나 요즘 모든 게 같은 맛이야. 이렇게 말하면 걱정할 것이다. 병원 가봤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 대화가 피곤하다.

가끔 옛날 사진을 본다. 음식 사진. 예쁘게 차려진 브런치, 생일 케이크, 회식 자리의 고기. 그때는 왜 그렇게 사진을 찍었을까. 맛을 기억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예뻐서였을까. 이제는 모두 같아 보인다. 색깔과 모양만 다른 영양분.

벚꽃이 피고 진다. 사람들이 꽃놀이를 가고, 먹고 마실 것을 챙긴다. 나는 창밖으로 그들을 본다. 맛있게 먹는 표정. 행복해 보인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하지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맛과 함께 그 기쁨도 사라졌으니까.

일기장에 뭐라고 쓸까. 오늘도 밥을 먹었다. 맛은 없었다. 그래도 배는 불렀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살아있다는 증거로는.

검은 점.

3월은 춤으로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저 햇살이 커튼 사이로 들어오고, 새소리가 들리고,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유튜브를 열었다.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맨발로 거실에 나가 빙글빙글 돌았다. 창문을 열었더니 봄 냄새가 확 밀려들어왔다. 축축한 흙냄새와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꽃향기.

일기장을 꺼내 썼다. “오늘은 정말 행복했다.” 과거형으로 쓴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치지 않았다. 아직 하루가 시작됐을 뿐인데 벌써 행복을 확정짓다니. 하지만 그런 예감이 들었다. 오늘은 끝까지 좋을 것이다.

점심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마늘을 볶는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면을 삶으면서 시간을 쟀다. 8분. 완벽한 알덴테를 위한 시간.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있다는 게 좋았다.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올리브오일의 향과 마늘의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혼자 먹는 점심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후엔 산책을 나갔다. 동네를 걷다가 담장 위에 앉은 고양이를 만났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무늬.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넸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천히 다가갔다. 도망가지 않았다. 내려와서는 다리에 몸을 비볐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한참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그르렁거리며 눈을 감았다.

처음 가본 제과점에서 크로아상을 샀다. 갓 구운 빵 냄새가 가게 밖까지 흘러나왔다. 종이봉투에 담긴 크로아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 층이 바스락거렸다. 한 입 베어 물자 버터가 혀에서 녹았다. 너무 맛있어서 부스러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온 집안에 버터 냄새가 퍼졌다.

친구가 보낸 사진을 보고 웃었다. 강아지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별것 아닌데 왜 그렇게 웃겼는지.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답장으로 웃는 이모티콘을 열 개쯤 보냈다. 친구도 웃는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그런 주고받음이 좋았다.

어느 날, 벽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작은 구멍. 침실 벽, 침대 머리맡 위쪽에 뚫린 구멍.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못을 박은 기억도 없고, 어딘가에 부딪힌 기억도 없다. 그냥 어느 날 거기 있었다. 새끼손가락 끝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래된 집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나중에 메꾸면 되지. 하지만 며칠 후 구멍이 조금 커진 것 같았다. 착각일까. 재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커진 것 같았다. 들여다보니 안은 깊고 어두웠다. 벽 너머가 아니라 더 깊은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처럼.

밤에 잠들기 전 구멍을 바라봤다. 검은 점 하나. 별것 아닌데 신경이 쓰였다. 혹시 벌레가 들어올까. 바람이 들어올까. 무언가 나올까.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다가 다시 내렸다. 구멍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조용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이 달의 마지막 날. 일기를 쓰려다가 멈췄다. 오늘은 뭐라고 써야 할까. 여전히 봄은 아름답고, 음식은 맛있고, 고양이는 귀엽다. 하지만 벽에는 구멍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구멍. 뭔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처럼, 아주 작지만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반복되는 꿈.

처음 그 꿈을 꾼 건 2월 첫째 주였다. 평범한 꿈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문 너머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열자 또 문이 나타났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열었다. 나무문, 철문, 유리문, 미닫이문. 모양도 크기도 다른 문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문을 열다가 깼다. 목이 말랐다.

다음 날도 같은 꿈을 꿨다. 이번엔 문의 순서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얀 문, 갈색 문, 빨간 문, 검은 문. 하지만 깨고 나면 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확실한 건 문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마치 미로 같았다. 출구가 없는 미로.

일주일째 같은 꿈이 반복됐다. 이제는 꿈인 줄 알면서도 문을 열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멈춰 서 있을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오직 앞으로, 다음 문으로 나아가는 것만 가능했다. 문고리가 뜨거워서 손을 덴 적도 있었다. 문이 너무 무거워서 온 힘을 다해 밀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열었다.

낮에도 문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을 열 때, 현관문을 닫을 때, 옷장 문을 열 때마다 꿈속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문고리의 차가운 감촉, 경첩이 돌아가는 소리, 문이 열리면서 만들어지는 바람. 모든 것이 꿈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친구를 만나 이야기했다. 반복되는 꿈을 꾼다고. 친구는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했다. 무언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거나, 선택을 미루고 있는 게 있지 않냐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문만 보일 뿐.

2월 중순, 꿈에 변화가 생겼다. 문 사이사이에 작은 방들이 나타났다. 텅 빈 방들. 가구도, 창문도 없는 사각형의 공간들. 잠시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멈추면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또 다음 문을 찾아 열었다.

어느 날은 꿈에서 깬 후에도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침실 문을 바라봤다. 저 문을 열면 정말로 거실이 나올까, 아니면 또 다른 문이 나올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열었다. 거실이었다. 안도했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거실 너머 부엌 문이 보였다. 그 너머엔 또 무엇이 있을까.

밤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잠들면 또 그 꿈을 꿀 것이다. 끝없는 문의 행렬. 하지만 안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타협했다. 잠들기 전에 모든 문을 확인했다. 옷장, 화장실, 베란다.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문 너머엔 평범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꿈에서는 달랐다. 꿈에서는 모든 문이 다른 곳으로 통했다.

2월 말, 나는 더 이상 문을 무작정 열지 않게 되었다. 노크를 하고, 귀를 대고 들어보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문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던가. 한때는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했는데. 이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봄이 다가온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계절.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문을 열어버렸다.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와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계속 나아가는 것뿐이다. 다음 문이 무엇이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든.

처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할머니의 인사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미소 지으며 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정말 제 자신을 잘 돌볼 거예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

1월 1일. 새로운 시작. 일기장 첫 장에 올해의 다짐을 썼다. 나를 사랑하기. 단순하지만 어려운 목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작년은 너무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위해, 관계를 위해 나를 너무 많이 깎아냈다. 올해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1월 15일.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아침부터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겨울이 너무 길게 느껴졌고, 해가 너무 짧았고, 모든 것이 무거웠다. 점심도 거르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걷고 싶었다.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동네 작은 상점가였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가게들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따뜻한 불빛들, 진열된 물건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한 가게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쇼윈도에 진열된 것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니, 예쁘다기보다는… 위로가 된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가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 종소리가 맑게 울렸다.

안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은은한 조명과 부드러운 음악. 천천히 둘러봤다. 하나하나 만져보고, 들어보고, 느껴봤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한 공간인 것 같았다.

무언가를 골랐다. 작은 것이었다. 비싸지도 않았다. 그저 마음에 들었다. 필요한 것 같았다. 이것이 있으면 오늘 하루가 조금 나아질 것 같았다. 내일도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대로 가져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게 나를 돌보는 방법일까. 작은 기쁨을 주는 것. 작은 위로를 찾는 것.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의 시선도, 판단도 신경 쓰지 않고.

그날 밤,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 꿨는지도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개운한 아침이었다. 어제 산 것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작은 것이지만 내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1월이 지나가면서 몇 번 더 그 가게에 갔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마다, 힘들 때마다. 많이 사지는 않았다. 하나씩, 필요할 때만. 그것들이 쌓여가는 걸 보며 안심했다. 나를 지켜주는 작은 보호막 같았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충분해질 거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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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in Yargui. July 18,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