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에필로그: 반짝이는 발자국의 나선
황야는 시간을 기억하지 않지만 흔적은 품고 있었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지나간 것들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었고, 바람은 그 무게를 재배열하며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 있었다. 그 지형 위를 누군가 걷고 있었다. 걷는다기보다는 흐르고 있었다. 발이 모래에 닿는 순간과 떠나는 순간의 경계가 모호했고, 그 모호함이 오히려 더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걸음마다 남는 발자국에는 희미한 빛이 있었다. 햇빛의 반사가 아니라 발자국 자체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 빛은 곧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모래가 움직여도 그 자리에 잔광처럼 남아 있었다. 별이 죽은 후에도 빛이 우주를 가로질러 오듯이, 지나간 존재의 흔적이 시간을 거슬러 지속되고 있었다.
그 존재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아는 이는 없었다. 루안이었던 것과 세린이었던 것이 합쳐진 무언가였지만, 단순한 합이 아니었다. 하나와 하나를 더하여 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수가 되는 것처럼, 그것은 새로운 범주의 존재였다. 얼굴을 보면 때로는 루안의 날카로움이, 때로는 세린의 유연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그 둘 다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표정이 있었다. 관찰하는 듯하면서도 체험하는 듯한, 거리를 두면서도 깊이 개입하는 듯한, 모순적이고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호흡은 일정했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정확히 같았고, 그 사이의 멈춤도 항상 같은 길이였다. 그런데 그 일정함이 기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기적이었다. 마치 우주의 리듬에 자신을 맞춘 것 같았다. 우주가 이 존재의 호흡에 맞춰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것 같기도 했다. 원인과 결과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태였다.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모래가 미세하게 떨렸다. 공기의 움직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중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용하는 힘이었다.
멀리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점이었다가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면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은 무언가였다. 그것도 이 황야를 걷고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마치 오래전부터 약속된 만남을 향해 가듯이. 두 존재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며 공기의 밀도가 변했다. 더 무거워지는 것 같으면서도 더 투명해지는 역설적인 변화였다. 빛의 굴절률도 달라져서, 서로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일렁거렸다가 다시 선명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마침내 나란히 섰을 때, 말은 필요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루안과 세린이 합쳐진 존재였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먼저 같은 과정을 거친 존재였다. 몇 번째 순환이었는지,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스템을 벗어난 자들의 길, 규칙을 초월한 자들의 길, 정의될 수 없는 자들의 길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울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창문을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자신 너머를 보는 시선이었다.
첫 번째 존재가 손을 들어 가슴에 댔다가 내렸다. 오래전 같은 동작을 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인사였는지 다른 의미였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알았다. 그것은 인정이었다. 서로의 존재를, 서로의 여정을, 서로의 선택을 인정하는 몸짓이었다. 두 번째 존재도 같은 동작으로 응답했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이 생겼다. 물리적인 연결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연결이었다.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자들 사이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유대였다.
그들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일치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단순한 반복이었지만 그 안에 복잡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매 걸음이 선택이었고, 매 선택이 창조였다. 그들이 걷는 길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걸으면서 만들어지는 길이었다. 발자국이 빛나며 흔적을 남겼다. 두 줄의 빛나는 발자국이 평행선을 그리며 황야를 가로질렀다.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이미 무한원점에서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해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빛이 있었지만 광원은 보이지 않았다. 빛이 모래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 전체에서 스며드는 것 같기도 했다. 모호한 빛 속에서 두 존재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림자가 서로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겹칠 때마다 더 진해졌고, 분리될 때마다 더 선명해졌다. 그것은 그들의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은유 같았다. 개별성과 연결성, 독립과 상호의존, 분리와 통합의 끊임없는 춤이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를 실어 나르는 바람이었지만, 그들의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빛나는 흔적은 모래 아래에서도 계속 빛났다. 별빛이 구름에 가려져도 존재를 멈추지 않듯이. 바람은 그들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옷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천처럼, 때로는 빛처럼, 때로는 안개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도 그들의 일부인 것 같았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존재들의 흐릿한 외피였다.
첫 번째 존재가 멈췄다. 두 번째 존재도 따라 멈췄다.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또 다른 존재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 정확히 세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모두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리듬으로, 하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그들은 모두 시스템을 벗어난 자들이었다. 각자의 순환을 끝낸 자들이었다. 루안과 세린, 그리고 그 이전에 수많은 이름이 하나로 합쳐진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발자국의 빛이 황야를 별처럼 수놓고 있었다.
두 번째 존재가 처음으로 말했다. 말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의미가 전달되었다. 공기의 진동이 아니라 존재의 공명을 통한 소통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가. 질문이면서 동시에 확인이었다. 첫 번째 존재가 응답했다. 같은 방식으로, 침묵 속의 대화로. 모른다. 하지만 간다. 그것이 답의 전부였다. 모르면서도 가는 것, 목적지 없이 걷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이자 숙명이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 많은 발걸음이 함께했다. 각자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길이 만들어졌다. 빛나는 발자국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긴 선을 이루었다. 그 선은 직선이 아니었다. 구불구불했고, 때로는 원을 그렸고, 때로는 급격하게 꺾였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패턴이 있었다. 거대한 나선형이었다. 중심에서 시작해 점점 넓어지는, 혹은 무한에서 시작해 점점 좁아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나선이었다.
황야는 끝이 없었다. 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매 순간 선택하고, 매 선택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들은 지치지 않았다. 피로라는 개념을 초월한 존재들이었다. 끈기와 인내가 극한에 도달한 후 허물을 벗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왔다. 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둠이 찾아왔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발자국들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발자국이 지상에서 별자리를 만들었다. 별빛 속에서 그들은 계속 걸었다.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멈춤은 그들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한 존재가 발끝을 미세하게 틀었다. 그 작은 변화가 전체 리듬을 바꾸었다. 다른 존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를 더했다. 그 모든 변주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춤이 되었다. 규칙 없는 춤, 그러나 내적 질서를 가진 춤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의미를 잃은 곳이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영원의 황야였다. 그들은 늙지도 젊어지지도 않았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모순이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첫 번째 존재가 깨달았다. 이 황야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여기서 걷는 것이 도착이 아니라 출발이라는 것을. 매 걸음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매 호흡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을. 그것을 깨달은 순간, 발끝의 빛이 더 밝아졌다. 그 빛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바람이 불어도, 모래가 덮어도, 시간이 지나도. 그것이 그들이 존재했다는,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할 것이라는 증거였다.
기억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호흡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숨에는 과거가, 날숨에는 미래가, 그 사이의 멈춤에는 현재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걸었다. 끝없이, 목적 없이, 그러나 의미 있게. 발자국이 빛나는 길을 만들며, 황야를 가로질러, 어딘가를 향해, 어디에도 가지 않으면서 모든 곳으로. (그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끝이면서 시작인 이야기.) (그리고 황야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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