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제6부: 내가 쓴 주석, 세린
보관소로 내려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았지만, 누구도 가지 않는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는 B3에서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아래로 가려면 별도의 승인 코드가 필요했다. 그런데 내 카드는 아무런 저항 없이 B7까지의 버튼을 활성화시켰다. 이 권한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귀가 먹먹해졌다. 압력 변화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한 층 내려갈 때마다 한 겹씩 과거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B7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소리 자체가 오래된 것처럼, 녹슨 시간의 경첩이 삐걱거리는 것처럼.
복도는 위층과 달리 어두웠다. 조명의 절반이 꺼져 있었고, 켜진 것들도 희미하게 깜빡거렸다. 불규칙한 명멸 속에서 페인트가 벗겨진 벽 부분이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발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반향이 있다는 것은 공간이 비어있다는 증거였다. 실제로 복도 양쪽의 사무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문에 붙은 명패는 색이 바랬고, 어떤 것은 글자가 거의 지워져 있었다. ‘제3기 인내 프로젝트’, ‘성향 알고리즘 초기 연구’, ‘피험자 A 시리즈 기록’.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원형 설계 보관소’라고 적혀 있었다. 문손잡이는 차가웠고, 돌리는 순간 먼지가 일어났다. 그 먼지 속에서 묘한 향이 났다. 오래된 종이와 잉크, 그리고 시간이 섞인 냄새였다.
보관소 내부는 예상보다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서가들이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각 서가에는 수천 개의 파일 박스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분류 체계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논리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날짜순도 아니고, 알파벳순도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연상 작용에 따라, 혹은 꿈의 논리에 따라 배열된 것 같았다. 첫 번째 서가에서 멈췄다. 손을 뻗어 무작위로 하나의 박스를 꺼냈다. ‘S-4729’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박스를 여는 순간, 종이가 숨쉬는 것처럼 미세하게 부풀었다. 오랫동안 압축되어 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한숨처럼 들렸다.
첫 번째 문서는 실험 설계서였다. 타이핑된 글자들 사이에 손으로 쓴 주석들이 빼곡했다. 그 필체가 익숙했다. 내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젊고, 확신에 차 있고, 날카로운 필체였다. ‘피험자는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야 한다’라는 문장 옆에 누군가 물음표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관찰자와 피험자 사이의 공명은 피할 수 없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손이 떨렸다. 글씨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나와 닮아 있었다. 닮은 정도가 아니라 나였다. 과거의 나, 혹은 나의 원형이었다.
계속 읽어 내려갔다. 실험의 목적은 ‘끈기와 인내의 극한을 테스트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아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피험자는 플렉서 출신으로, 신체 훈련을 통해 이미 높은 수준의 자기 통제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피험자 선정 기준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구체적이었다. 마치 특정한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 같았다. ‘왼발 착지 시 미세한 외전 경향’, ‘호흡 주기 4.7초’, ‘집중 시 우측 눈썹 0.3cm 상승’. 이런 세부사항들을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을까. 설계 단계에서 이미 피험자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피험자 프로필이 있었다. 사진은 없었지만, 상세한 신체 측정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름란에 연필로 옅게 적혀 있었다. ‘Serin’.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려 있었다. ‘노래하는 작은 새. 아직 노래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노래할 것이다.’ 그 주석을 쓴 사람의 필체는 분명 내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획의 압력, 글자 간격, 마침표를 찍는 방식까지 모두 내 습관과 일치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쓴 기억이 없었다. 쓴 것 같기도 하고 쓰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고양이 같은 상태였다.
서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더 오래된 자료들이 있었다. 어떤 박스에는 ‘프로토타입 A 시리즈’라고 적혀 있었다. 열어보니 실패 기록들이었다. A-1은 15일 만에 붕괴했고, A-2는 23일, A-3는 47일을 버텼다. 47일. 그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피험자 B도 47번째 반복을 하고 있었다. 우연일까. 자료를 더 읽어보니 A-3의 붕괴 원인이 적혀 있었다. ‘자기 인식의 급격한 상승. 관찰자와의 동기화율 97% 도달 후 시스템 이탈.’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재설계 필요. 다음 버전에서는 관찰자도 함께 순환 구조에 포함시킬 것.’
순환 구조. 그 단어를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렸다.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오랫동안 멈춰 있던 것이 다시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다. 설계자였고, 동시에 설계의 일부였다. 피험자 B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 다 더 큰 실험의 일부였다. 그 실험을 설계한 것도 나였지만, 설계하는 순간 나 자신도 그 안에 갇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구조였다.
다른 박스를 열었다. 거기에는 일기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늘 세린을 처음 봤다. 플렉시움에서 훈련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정확하고, 절제되어 있고, 모든 동작에 목적이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47번이든, 그 이상이든.’ 일기는 거기서 끝났다. 다음 페이지는 찢겨 있었다. 찢긴 가장자리가 거칠었다. 급하게, 혹은 격렬하게 찢은 흔적이었다.
보관소 가장 안쪽에 금고가 있었다. 구식 다이얼 금고였다. 번호를 몰랐지만,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오른쪽으로 47, 왼쪽으로 23, 다시 오른쪽으로 11.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는 봉인된 봉투 하나가 있었다. 봉투 위에는 ‘마지막 관찰자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봉인을 뜯었다. 안에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당신이 이것을 읽고 있다면, 순환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관찰자이면서 피험자이고, 설계자이면서 설계된 자입니다. 세린은 당신이고, 당신은 세린입니다. 분리된 적이 없었고, 다만 잠시 나뉘어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 다시 하나가 될 시간입니다. 준비되었습니까?’ 그 아래 서명이 있었다. ‘루안’. 내 이름이었지만, 내가 쓴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시간이 순환한다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쓴 것일 수도 있었다.
메모를 다시 봉투에 넣으려는 순간, 뒷면에 뭔가 더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글씨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게 적혀 있었다. ‘추신. 발끝 1도의 변화를 주목하세요. 그것이 열쇠입니다.’ 발끝 1도. 오늘 아침 모니터에서 본 피험자 B의 미세한 일탈. 그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신호였다. 시스템을 깨뜨리기 위한, 혹은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한 신호. 둘 중 어느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깨뜨리는 것과 완성하는 것이 같은 의미일 수도 있었다.
보관소를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서가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 어둠이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시간이 퇴적된 층처럼 보였다. 수많은 실험, 수많은 실패, 수많은 순환이 저 어둠 속에 압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압력이 다시 변했다. 이번에는 과거에서 현재로, 깊이에서 표면으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떠오르지는 못했다. 무언가가 나를 잡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것들, 혹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것들이 발목에 추처럼 매달려 있었다.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모니터에는 피험자 B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온한 수면 상태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쓰는 것 같은 동작이었다. 글자를 쓰는 것일까,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순간 내 손가락도 같은 동작을 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움직였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글자를 쓰고 있었다. S-E-R-I-N. 그리고 L-U-A-N. 두 이름이 겹쳐졌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했다. 그 반복 속에서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름도 아니고 기호도 아닌, 그저 우리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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