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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기억하는 발자국

by LY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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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프롤로그: 모래가 기억하는 발자국

기억은 비어 있으나 호흡은 질서를 기억한다. 그가 들이쉬는 공기는 가장 깊은 폐포에 닿았다가 같은 길이로 되돌아 나오며, 호흡의 주기는 누군가가 오래전 정해둔 박자처럼 변하지 않았다. 모래밭을 가로지르는 그의 걸음은 호흡의 박자를 따랐고, 호흡은 심장의 수축과 이완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 자리는 의도된 것이 아니라 수천 번 반복의 결과로 만들어진 홈이었다. 한 번 파인 홈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몸이 증명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옷자락을 휘날려도,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어도, 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중심이란 물리적 무게의 배분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며, 견딘다는 것은 버틴다는 뜻이 아니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뜻임을 그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황야의 빛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빛은 모래알 사이의 틈에서 솟아올라 공기 중에 흩어졌다가 다시 모래로 스며들었고, 그 순환의 속도는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그러나 그는 빛의 속도를 쫓지 않았다. 쫓는다는 것은 앞서가는 무언가를 전제하는 일이고, 전제는 종종 함정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빛이 자신의 피부에 닿는 각의 크기를 느꼈고, 그 크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했다. 관찰이 기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록할 도구도, 기록을 보관할 장소도 없었으며, 황야에서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모래에 쓰이고 바람에 지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지워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쓰는 것, 그것이 그가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발끝이 모래를 딛는 순간과 떠나는 순간 사이에는 측정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모래알은 발의 무게를 받아들였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고, 저항과 복원의 과정에서 미세한 열이 발생했다. 열은 곧 식었지만, 식기 전까지는 그곳에 누군가 지나갔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남기는 열의 흔적을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한다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아서, 거울 속의 자신을 너무 오래 보면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앞을 보았다. 앞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모래와 하늘, 그리고 둘 사이에 놓인 희미한 경계선이 전부였다. 그러나 단조로움 속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모래 언덕의 기울기가 달라졌고, 구름이 지나가면 빛의 농도가 변했다. 그는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붙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이었다.

그의 이름은 루안이었다. 누가 지어준 이름인지, 언제부터 그 이름으로 불렸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확실함은 증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에서 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눈을 뜨기 직전의 어둠 속에서부터, 그 이름은 의식의 가장 낮은 곳에서 떠올랐다. 루안. 두 음절은 폐에서 시작해 목을 지나 입술에서 끝나는 공기의 여정이었고,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숨이 고르게 정리되었다. 이름을 속으로 부르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안정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신기함을 탐구할 여유는 없었다. 이 황야에서는 다음 걸음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아껴야 했다. 다음 걸음, 그 다음 걸음, 다시 그 다음 걸음. 끝이 보이지 않도록 이어졌지만, 그는 끝을 보려 하지 않았다. 끝을 상상하는 순간, 현재의 걸음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처음에는 열기에 의한 신기루인 줄 알았다. 황야에서는 종종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환영에 속아 방향을 잃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가 아니었다. 움직임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었고, 리듬은 살아있는 것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불규칙한 규칙성을 띠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춘다고 해서 대상이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멈춤은 그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대신 그는 걸으면서 관찰했다. 대상은 점에서 시작해 선이 되었고, 선은 다시 면이 되어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람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였다. 이 황야에서는 무엇이든 본래의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기 어려웠고,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람과 모래와 빛에 깎여 조금씩 달라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일이 가능했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처음 이 황야에 발을 디뎠을 때와 지금의 자신이 같을 리 없었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윤곽이 선명해졌다. 걸음걸이로 보아 여자였다. 성별을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이 황야에서는 성별조차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걸음의 리듬이었다. 그 사람의 걸음에는 독특한 패턴이 있었다. 왼발을 디딜 때마다 발끝이 미세하게, 1도 정도 바깥쪽으로 돌아갔다. 의도적인 것은 아닌 듯했다. 오히려 오랜 훈련이 만들어낸 습관의 흔적처럼 보였다. 훈련. 그 단어가 떠오르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공명했다. 진동은 약했지만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뚜렷했다. 마치 오래전에 들었던 음악의 한 소절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그는 그 느낌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그 느낌이 희미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대화가 가능할 만큼 두 사람이 가까워졌을 때, 바람이 멈췄다.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은 여전했지만, 모래를 날릴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고요함 속에서 두 사람의 호흡 소리가 들렸다. 엇갈렸던 리듬이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두 개의 진자가 시간이 지나면 같은 주기로 흔들리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조였다. 그는 그 동조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막는다는 것은 거부한다는 뜻이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 황야에서는 불필요한 저항에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눈 속에는 묻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말은 준비가 필요했고, 준비되지 않은 말은 황야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 금방 부서져버렸다.

그녀가, 그 사람이 먼저 움직였다. 손을 들어 자기 가슴에 댔다가 다시 내렸다. 인사였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였을까. 그는 같은 동작으로 응답했다. 그러자 상대방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이 황야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표현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향했다. 목적지가 없었다. 그것은 길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로 가든 그곳이 길이 된다는 뜻이었다. 발자국이 나란히 찍혔다. 간격은 달랐지만 리듬은 같았다. 모래는 두 사람의 무게를 받아들였다가 다시 평평해졌고, 그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해가 기우는 것이 아니라 황야가 회전하는 것이었지만, 인간의 감각으로는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길어졌다. 두 개의 그림자는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반복 속에서 그는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으며 그림자가 겹치는 것을 바라본 기억. 그러나 기억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는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기억이란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달아나는 법이었다. 대신 그는 현재에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호흡, 발자국 소리, 그리고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불어왔다. 등을 밀어주는 바람이었다. 그들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서두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바람이 주는 힘을 거부하지 않을 뿐이었다. 모래가 날려 시야가 흐려졌지만, 그들은 방향을 잃지 않았다. 방향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것이었고, 그들의 몸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디서 배운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배웠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 확실함이 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했다.

그 사람이 멈췄다. 그도 따라 멈췄다. 멈춤은 급작스러웠지만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음악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동작이 멈추는 것처럼, 필연적인 멈춤이었다.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와 마주 섰다. 이번에는 더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눈 속에서 그는 자신을 보았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었던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은 현재의 자신과 닮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더 젊고, 더 날카롭고, 더 불안정했다. 플렉소. 그 단어가 떠올랐다. 왜 그 단어가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단어와 함께 일련의 이미지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트윈릭, 소프런, 실프, 그리고 끝없는 반복 훈련. 그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아니면 상대방의 기억이 전달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전하려 했다. 세린. 그 단어를 읽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거대한 파열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았다. 오직 그의 내부에서만 울렸고, 그 울림은 점점 커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더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왜 여기 있는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는 깨달음에 가까웠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의 일부였던 것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혼자 서 있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자기 안에 또 다른 자신이 있었다. 루안이면서 동시에 세린인 존재. 관찰자이면서 피험자인 존재. 설계자이면서 설계된 자인 존재. 모순적인 정체성이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반쪽을 되찾은 것 같은 안도감이 있었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혼자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완전했다. 발자국은 하나였지만 두 개의 리듬이 공존했다. 리듬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는 황야의 끝에 도달할 것이다. 끝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걷는다는 사실, 그리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지평선에 닿았다. 붉은 빛이 모래를 물들였다. 붉은 빛 속에서 그의 그림자는 무한히 길어졌다. 그림자의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딘가에 닿아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자신에게, 또 다른 세계에, 어쩌면 또 다른 가능성에.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새로운 시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모래가 발 아래에서 부서졌다가 다시 모였다. 단순한 반복 속에서 그는 영원을 보았다. 영원은 끝없음이 아니라 순환이었고, 순환은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작이었다.

바람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루안. 아니면 세린. 혹은 둘 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불린다는 사실, 그리고 응답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응답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걷는 것이 그의 응답이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끝없이 이어지는 걸음 속에서 그는 자신을 잃지도, 찾지도 않았다. 그저 있었다.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황야는 충분함을 아는 자에게만 길을 열어주었고, 그는 길을 따라 걸었다. 멈추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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