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선의 결

by Ariel Daley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멈춰 있던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사실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횡단보도의 흰 선이 시간의 결을 따라 나 있는 길처럼 보인다. 첫 발을 내딛는다. 선을 밟을 때마다, 얇고 단단한 무언가가 발바닥을 따라 흔들린다. 단순한 바닥이 아니다. 선과 선 사이에 무언가 숨쉬고 있다. 나를 부르지도, 막지도 않는 무언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눈은 나를 보지 않지만, 나는 그들의 걸음을 느낀다. 걸음의 빠르기, 어깨의 움직임, 손끝의 떨림. 교차할 때마다 무언가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나는 그 사라짐을 따라간다. 사라지면서 남는 것이 더 크고, 그것이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처럼 느껴진다.

햇빛이 횡단보도를 가로지른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각자의 그림자가 서로 겹치고 찢어진다. 그림자가 가벼운 종이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나는 그림자가 지닌 무게를 느낀다. 바람이 그림자를 밀어내고 다시 붙잡는 동안 내 그림자는 선명해졌다가 흐려진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손길 같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손길.

자전거가 신호에 맞춰 움직인다. 페달이 돌며 작고 메마른 소리를 낸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에서 먼지가 흩어진다. 먼지는 태양빛 속에서 살아있는 듯 춤춘다. 나는 그 춤을 따라 눈을 움직인다. 먼지가 사라지면서도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지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타고 흘러간다. 그것은 내가 길을 건널 때마다 마주치는 짧은 인연과 같다. 짧지만 뚜렷하고, 뚜렷하지만 사라지는.

길을 건너며 시간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신호등의 깜빡임이 들려주는 박자, 사람들의 발소리가 만들어낸 리듬, 자전거의 스침이 더해진 화음. 모든 것이 하나로 엮이며 나를 감싼다. 내 걸음이 이 소리에 어울리길 바란다. 신호등 끝에서 길을 다 건넜을 때, 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 희미함 속에서 새로운 소리가 태어난다. 그것은 나와 뒤섞인 모든 것의 메아리다.

횡단보도를 지나 길 끝에 닿았을 때.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남기고 간 발자국, 내가 지나치며 느꼈던 그림자, 내가 들이쉬었던 공기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것을. 내 뒤에서 나를 따라오지 않지만, 나와 함께 있다. 보이지 않는 끈처럼 나를 앞으로 당기며 내내 연결되어 있다.

천천히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아래에서 여전히 선을 밟고 있다. 선은 이어지고, 이어지는 선 위에서 나는 존재의 무게를 느낀다. 무게는 가볍지만 명확하다. 길 위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몸과 기억 속에서, 그것은 계속 이어진다.

January 7t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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