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히브리어의 기원
히브리어는 셈어족(Semitic language family)에 속하는 언어로서, 오늘날의 중동 지역 전반에 퍼져 있던 고대 셈어군 중 하나였다. 기원은 오랜 옛날 가나안(Canaan)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페니키아어, 아람어 등과 유사한 문법·어휘 체계를 공유했다. 일반적으로 가나안 방언 중 하나로 분류되며,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일상 언어로 사용했던 기록이 고고학적 자료와 성서 전승에서 함께 발견된다.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문헌 흔적은 기원전 10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스라엘 왕국이 형성되면서 통치·행정, 종교 의례, 사회·문화적 활동에서 히브리어가 공통 언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유대 왕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서 히브리어(Biblical Hebrew)로 불리는 형태가 정착했으며, 히브리어 성경(타나크, Tanakh)이 저술됨으로써 문어체로도 확립되었다.
고대 히브리어는 당대 근동 지역의 다른 셈계 언어와 접촉하면서 어휘 차용과 발음 변화를 거쳤고, 페니키아 문자에서 발전한 고유 알파벳 체계를 통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문자·언어적 특징은 이후 수천 년에 걸쳐 히브리어가 다양한 지역과 시대를 거치면서도 근본 골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기반이 되었다.
2. 히브리어의 소멸과 보존
고대 히브리어는 유대 왕국 멸망 이후, 바빌론 유수(Babylonian Exile)를 거치면서 점차 일상 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 제국에게 패배한 뒤, 히브리어 사용자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로 여러 지역에 흩어졌고, 그 과정에서 아람어가 국제적인 통상 언어이자 일상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히브리어는 주로 성서(타나크)의 언어이자 종교 의식에서만 유지되는 형태가 되었다. 일상 생활에서는 아람어와 다른 지역 언어들이 쓰였고, 히브리어는 “문어(文語)로서의 지위”를 간신히 이어갔다. 특히 유대인 공동체가 흩어진 지역에서 회당(synagogue)이나 종교 교육기관을 통해 성서와 탈무드 해석에 사용됨으로써, 문자·발음 전통이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유럽·중동·북아프리카 등지로 이주한 유대인 공동체가 현지 언어(예: 스페인어, 독일어, 아랍어)와 히브리어를 융합한 이른바 유대계 언어 (예: 라디노(Ladino), 이디시(Yiddish))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들 언어는 히브리어 어휘와 표현을 다수 포함하면서도 별개의 언어체계로 발전하였으며, 히브리어 자체는 종교 교육·주석서에서만 명맥을 유지했다.
히브리어는 일상적 회화 언어로 “사멸” 상태에 가까웠으나, 종교 텍스트와 학술 전통에서 꾸준히 인용되고 학습되는 바탕이 남아 있었다. 훗날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루어진 히브리어 부흥 운동이 가능한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되며, 이는 역사적으로 드문 “죽은 언어의 부활” 사례를 낳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3. 현대 히브리어의 부활
히브리어가 일상 언어로 재탄생하게 된 과정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19세기 후반, 유대 민족주의(시온주의)의 대두와 함께, 디아스포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 땅(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공통 언어 부활에 대한 필요가 절실해졌다. 당시 유대 공동체는 세계 각지에서 사용해 온 모국어(러시아어, 폴란드어, 아랍어 등)가 달랐기에, 조상들의 ‘성서 언어’를 되살리는 것이 민족적 정체성과 결속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떠올랐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Eliezer Ben-Yehuda)였다. 그는 19세기 말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뒤, 당시 종교 의식과 주석서에서만 사용되던 고대 히브리어를 현대 일상 언어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전 편찬, 신조어 제정, 교육 운동을 벌였다. 자신의 가족을 대상으로 어린아이에게 히브리어만 쓰게 하는 일종의 ‘가정 실험’을 주도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로 넘어오며, 팔레스타인 지역(이후 이스라엘)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학교나 공동농장(키부츠, Kibbutz) 등에서 히브리어 교육이 활발해졌다. 신문, 출판, 라디오 방송 등이 히브리어 중심으로 제작되었고, 대중이 쓰는 표현이나 주제별 신조어를 발굴·정착시키는 히브리어 아카데미 등의 기관도 설립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히브리어는 공식 언어로 자리 잡았으며, 아랍어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의 주된 소통 수단이 되었다. 일제히 영어·프랑스어·독일어·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권 출신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제2언어로 습득하면서, 완전히 사멸 상태에 있던 언어가 국가 공용어로 부활하는 역사적 사례를 이뤄낸 것이다.
이러한 언어 부흥은 성서 히브리어 문법과 어휘를 토대로, 아람어, 유럽 언어 차용어 등을 받아들여 새로운 일상어를 만들어 낸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그 결과, 현재 우리가 부르는 현대 히브리어(Israeli Hebrew)는 고대 히브리어와 기본 골격을 공유하면서도, 현대적 신조어와 간소화된 문법이 더해진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