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어 맛보기: 한국어 화자가 주목할 만한 특징

by Ryu Yuna

루마니아어는 다른 로망스어와 상당히 비슷한 듯하면서도, 발칸 지역 특유의 어법을 일부 흡수하여 한국어 화자에게 생소한 구석이 적지 않다. 여기서는 그러한 특징들 중, 학습 초기부터 눈여겨봐야 할 사항들을 살펴본다.

1. 후치 정관사와 격 변화

루마니아어가 로망스어 계열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점은, 정관사(articol hotărât)가 명사 뒤에 붙는 후치 형태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un băiat “(어떤) 소년” → băiatul “그 소년”, o fată “(어떤) 소녀” → fata “그 소녀” 식이다.

한국어 화자는 보통 “그 소년”이라는 표현이 명사 앞에 오는 것으로 익숙하지만, 루마니아어에서는 -ul, -a, -i, -le 같은 후치 어미로 관사를 표시한다. 이는 발칸반도 다른 언어(알바니아어·불가리아어 등)에서도 보이는 발칸 Sprachbund 현상이며, 동시대 서유럽 로망스어와 구분되는 핵심 특징이다.

또 한 가지, 한국어는 조사로 주격·목적격·속격 등을 표시하지만, 루마니아어는 명사 형태 자체가 성(남·여·중성), 수(단·복수), 격(주/목/속/여 등) 변화를 겪는다. 예를 들어 남성 단수 명사 “băiat”가 속격이나 여격으로 변하면 băiatului (al băiatului 형태 포함) 등이 되며, 여성 명사나 복수 명사의 경우 또 다른 형태 어미를 취한다.

  • un băiat (주격·목적격, 부정관사 남성 단수)
  • băiatul (주격·목적격, 정관사 남성 단수) → “그 소년”
  • băieți (복수, 부정관사 형태) → “소년들”
  • băieții (복수, 정관사) → “그 소년들”
  • băiatului (속격·여격) → “소년의/~에게”

한국어 화자는 “명사의 형태가 꼭 바뀌어야 하나? 조사처럼 붙이면 안 되나?”라고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루마니아어가 명사 굴절을 통해 문장 관계를 표시하는 인도유럽어적 전통(특히 발칸 로망스)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어 목록을 외울 때, “단수형(부정·정관사), 복수형(부정·정관사), 속격·여격 형태” 등 주요 굴절 형태를 세트로 익혀 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결론적으로, 후치 정관사명사 굴절 구조는 루마니아어 문법 체계의 뼈대를 이룬다. 한국어 화자가 이 부분을 빠르게 이해하면, 문장에 등장하는 명사의 역할(주어·목적어·소유 등)과 “그 소년 / 그 소녀 / 그 소년들…” 같은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된다.

2. 모음 â/î, ă 발음

한국어 화자가 루마니아어를 접할 때 가장 낯설게 느끼는 발음 중 하나는 â/î([ɨ])와 ă([ə])라는 두 가지 중성 모음이다. 다른 로망스어나 영어에서도 보기 어려운 음가여서, 처음에는 “어?”, “으?” 사이 어디쯤인지 헷갈릴 수 있다.

먼저, âî는 철자만 다를 뿐 실제 음가([ɨ])는 동일하다. 루마니아 정서법에서는 주로 단어 처음이나 전체가 그 음을 가질 경우 î를 쓰고, 나머지 위치에서는 â를 쓴다. 예를 들어, încă([ˈɨn.kə]) “아직”, sâmbătă([ˈsɨm.bə.tə]) “토요일”. 발음 시 혀가 뒤로 당겨지며, 입술 모양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 편이다.

ă([ə])는 국제음성기호(IPA)로 schwa에 해당하며, “어” 혹은 “으”에 가깝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입을 살짝 벌린 상태에서 혀를 중앙에 두고, 모음을 가볍게 내뱉는 느낌이다. 예) ([mə]) “나(여격·목적격)”, rău([rəw]) “나쁘게, 잘못”.

  • a înțelege [ɨn.t͡seˈle.d͡ʒe] “이해하다”
    (동사원형 형태: înțeleg는 “(내가) 이해한다”)
  • frânghie [ˈfrɨn.ɡi.e] “밧줄, 로프”
  • tânăr [ˈtɨ.nər] “젊은” (남성 단수)
  • mă duc [mə ˈduk] “나는 간다”
  • fată [ˈfa.tə] “소녀” (여성 단수)

한국어 화자는 [ɨ], [ə] 차이를 처음에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연습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 [ɨ] (â/î):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 혀를 뒤로 당긴 상태에서 “으”를 한 단계 더 뒤로 보내는 느낌으로 발음. 숨소리를 조금 더 뒤쪽에서 내뱉는다는 기분으로.
  • [ə] (ă): 혀와 턱을 좀 더 가볍게 떨어뜨리고, 영어 about의 첫 소리처럼 가볍게 “어” 소리를 냄.

반복 청취, 녹음 비교, 원어민 피드백 등을 통해, 두 모음을 뚜렷이 구별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쓰기 측면에서도, 단어 안에 â가 들어갈지 ă가 들어갈지를 잘못 쓰면 의미나 발음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철자까지 함께 학습해야 한다.

3. 어순과 빈도 높은 전치사

루마니아어의 기본 어순SVO(주어-동사-목적어)이다. 다만 인칭 동사 활용이 발달해 있어, 주어 대명사를 생략하거나 문두·문말로 이동시켜 강조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Eu merg”과 “Merg eu”의 의미는 유사하지만, 문맥상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어순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 목적어나 전치사구를 강조하고 싶을 때에는 문장 맨 앞이나 맨 뒤로 배치하는 경우도 많다. 예: Pe Maria o văd eu “(마리아를) 내가 본다” 식으로, 목적어 Maria를 문두로 뺀 뒤 대명사 o를 중복하여 사용하여 강조한다.

빈도 높은 전치사는 다음과 같다:

  • la: “~에, ~에게, ~로” 등
    예) Merg la școală “나는 학교에 간다”
  • pe: 직접 목적어 표시(특히 사람·구체 대상), 또는 “위에(on)” 의미
    예) Văd pe Alex “나는 알렉스를 본다”, Pe masă “테이블 위에”
  • cu: “~와 함께(with)”
    예) Vin cu prietenii “나는 친구들과 함께 온다”
  • de: “~의, ~에서부터, ~에 대해” 등 다양한 의미
    예) De unde ești? “어디 출신이니?”, cartea de istorie “역사책(역사의 책)”
  • în: “~안에(in)”
    예) în casă “집 안에”
  • dintre: “~중에서(among)”
    예) dintre prieteni “친구들 중에서”

특히 pe 전치사는 “사람이나 구체 대상을 직접 목적어로 삼을 때” 문장에 필수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예: Îl văd pe profesor “나는 선생님을 본다”, 여기서 pe profesor는 구체 대상이므로 pe가 필요하다. 이는 스페인어·포르투갈어의 “a + 목적어”와 유사한 발칸/로망스적 특징이다.

어순과 전치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문장 속에서 어떤 목적어·부사어가 강조되는지, 대상이 구체·추상인지 등을 표시한다. 한국어 화자는 보조사(을/를, 에서/에게 등)를 써서 구분하지만, 루마니아어에서는 pe, la, cu 같은 전치사가 명사·대명사 앞에 등장하고, 필요시 인칭 대명사(목적어)가 중복되는 패턴(o văd, îl văd 등)을 이해해야 한다.

4. 루마니아어-몰도바어 관계

루마니아어와 몰도바어는 사실상 동일한 언어로 인식되지만, 역사적·정치적 맥락에서 명칭이 달리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도바 지역이 루마니아와 분리된 과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몰도바 공화국(옛 베사라비아 지역)은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뒤, 소련 시기에는 공식적으로 “몰도바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한때 키릴 문자로 표기하기도 했다. 소련 체제에서 “몰도바어는 루마니아어와 다른 독립된 언어”라는 정치적 입장을 내세웠고, 이를 통해 지역 정체성을 분리하고자 한 것이다.

1989년 이후, 몰도바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라틴 문자가 다시 도입되고, 많은 언어학자가 “몰도바어 = 루마니아어”라는 견해를 지지하였다. 실질적으로 어휘, 발음, 문법 등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두 지역 화자끼리는 일상 회화에서 완벽히 소통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몰도바 헌법이나 공문서에서는 여전히 “limba moldovenească”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며, 정치적·문화적 이유로 몰도바 내 일부 인사는 루마니아와 차별화되는 정체성을 강조한다. 반면, 최근 몰도바 법률 개정이나 대법원 결정 등으로 “limba română(루마니아어)” 표기가 확대되고 있어, 명칭 논란이 점차 해소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한국어 화자 입장에서는 “몰도바어와 루마니아어가 동일 언어 또는 매우 근접한 변이형”이라는 점을 알면 충분하다. 키릴 문자 사용이 극히 제한적으로 남아 있을 뿐, 실제 구어·문어체 모두 라틴 문자 루마니아어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루마니아어를 배운다면 몰도바 지역에서도 거의 문제 없이 언어 소통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