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키미』 감상 후기

by LY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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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i
(2022, Steven Soderbergh)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안젤라의 통제된 실내와 혼란스러운 바깥. 투명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벽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스스로 만든 안전한 공간과 바깥세상 사이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

안젤라의 아파트는 그가 만든 작은 세계다. 안젤라는 자기 세계에서 광장공포증을 숨기고, 팬데믹을 핑계 삼아 자신의 불안을 정당화한다. 집 안의 고요함은 그에게 안전을 의미한다. 불확실한 것이 없는 공간.

창밖은 다르다. 코로나와 시위로 혼란스러운 시애틀 거리. 통제할 수 없는 소음과 사람들. 소더버그 감독은 이 대비를 화면의 색감과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안정된 실내의 정적과 불안정한 외부의 동적인 모습.

‘키미’라는 AI 스피커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인공지능 스피커, 원격진료, 재택근무 등 현실에 존재하는 기술은 영화에 현실감을 더한다. 안젤라가 발견한 살인 사건의 증거는 이런 기술을 통해 포착된다. 기술이 편리함과 동시에 감시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순간.

주근깨와 파란 머리카락이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조 크라비츠의 모습.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다. 공포와 불안을 감추려는 노력, 그리고 진실을 향한 용기가 그의 표정과 몸짓에 담겨있다.

영화는 안젤라가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빠르게 전개된다. 카메라가 불안정해지고, 안젤라의 시선과 함께 관객의 시선도 흔들린다. 네모난 창문, 거울에 비친 모습, 휴대폰 화면. 우리는 계속해서 프레임 안에 갇힌 세상을 본다.

범죄를 밝히는 과정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뻔한 결말.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의 핵심은 스릴러 반전이 아니라, 안젤라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여정에 있다. 공포와 불안을 이기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말이다.

『키미』는 화려하거나 새롭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정확하게 비춰낸다. 기술과 인간, 안전과 위험, 고립과 연결 사이의 미묘한 균형.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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