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공간의 정의
벡터공간에서 길이(length)와 각도(angle)에 대한 개념을 더 풍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벡터들 사이에 내적(inner product)이라는 연산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적을 통해 벡터공간의 원소들이 서로 얼마나 “가깝거나 멀리” 위치하는지, 혹은 서로 “직교(orthogonal)하는지”를 수량화할 수 있다. 이 절에서는 내적이 만족해야 하는 기본 공리들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내적공간의 정의를 제시한다.
정의 1. (내적, 내적공간)
체 \(\mathbb{F}\)가 실수(\(\mathbb{R}\))인 경우(또는 복소수(\(\mathbb{C}\))인 경우)에 대하여, \(\mathbb{F}\)-벡터공간 \(V\) 안에서 함수 \[ \langle \cdot , \cdot \rangle : V \times V \;\to\; \mathbb{F} \] 가 다음 공리들을 만족하면, 이 함수를 내적(inner product)이라고 부른다.
- (양의 정부호성) Positivity
모든 \(\mathbf{u} \in V\)에 대하여 \(\langle \mathbf{u}, \mathbf{u} \rangle \ge 0\) 이고, \(\langle \mathbf{u}, \mathbf{u} \rangle = 0\) 이면 \(\mathbf{u} = \mathbf{0}\)이다. - (선형성) Linearity
실수(또는 복소수) 벡터공간인지 여부에 따라 세부 사항이 약간 달라진다.- 만약 \(\mathbb{F} = \mathbb{R}\)이라면, 임의의 \(\alpha, \beta \in \mathbb{R}\)와 \(\mathbf{u}, \mathbf{v}, \mathbf{w} \in V\)에 대하여 \[ \langle \alpha\mathbf{u} + \beta\mathbf{v}, \mathbf{w} \rangle = \alpha \langle \mathbf{u}, \mathbf{w} \rangle + \beta \langle \mathbf{v}, \mathbf{w} \rangle. \]
- 복소수 벡터공간일 경우에는 sesquilinear(반선형) 성질을 가정하여, 첫 번째(혹은 두 번째) 인자에 대한 켤레선형성(conjugate-linearity)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 교재에서는 주로 실수 벡터공간을 다룬다고 가정한다.
- (대칭성) Symmetry (실수 공간의 경우)
\(\langle \mathbf{u}, \mathbf{v} \rangle = \langle \mathbf{v}, \mathbf{u} \rangle\). (복소 벡터공간이라면 \(\langle \mathbf{u}, \mathbf{v} \rangle = \overline{\langle \mathbf{v}, \mathbf{u} \rangle}\)와 같은 켤레대칭성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적이 주어진 벡터공간을 \((V, \langle \cdot , \cdot \rangle)\)와 같이 쌍으로 나타낸다. 내적이 주어진 벡터공간을 내적공간(inner product space)이라고 부른다.
내적은 벡터 사이의 “길이”와 “각도”를 정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로부터 거리(distance), 노름(norm) 등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도입되며, 벡터 간의 직교성(orthogonality)을 수학적으로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다.
보기 1.
가장 대표적인 내적공간의 예는 \(\mathbb{R}^n\)에서의 표준 내적이다. 임의의 두 벡터 \(\mathbf{x} = (x_1,\dots,x_n)\)와 \(\mathbf{y} = (y_1,\dots,y_n)\)에 대하여,
\[ \langle \mathbf{x}, \mathbf{y} \rangle = x_1 y_1 + x_2 y_2 + \cdots + x_n y_n \]
로 정의한다. 이를 스칼라곱(scalar product)이라고도 부른다. 이 내적은 양의 정부호성, 선형성, 대칭성을 모두 만족하여, 내적공간을 이룬다.
보기 2.
행렬공간 \(M_{m\times n}(\mathbb{R})\) 위에서도 내적을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행렬 \(A=(a_{ij})\)와 \(B=(b_{ij})\)에 대하여
\[ \langle A, B \rangle = \sum_{i=1}^m \sum_{j=1}^n a_{ij}\,b_{ij}. \]
이 정의는 사실상 \(\mathbb{R}^{mn}\)에서의 표준 내적과 동일하게 동작한다. 이때 \(\langle A, A \rangle \ge 0\)이고, \(\langle A, A \rangle=0\)일 때는 \(A\)가 영행렬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내적으로서의 공리들을 만족한다.
보기 3.
다항식공간에서 내적을 정의하는 예도 많다. 예를 들어, 구간 \([0,1]\)에서 정의된 1차 이하 다항식들의 공간 \(P_1(\mathbb{R})\)에서,
\[ \langle p, q \rangle = \int_{0}^{1} p(x)\, q(x)\, dx \]
와 같이 적분을 통해 내적을 정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p(x) = a_0 + a_1 x\)와 \(q(x) = b_0 + b_1 x\)라 하면,
\[ \langle p, q \rangle = \int_{0}^{1} (a_0 + a_1 x)(b_0 + b_1 x)\, dx. \]
이 연산은 양의 정부호성, 선형성, 대칭성을 만족하므로 \(\{p, q\}\)에 대한 내적이 된다. 이를 적절히 확장하면, \([a,b]\) 구간 위의 실수 다항식공간, 혹은 일반적인 실함수공간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내적을 정의할 수 있다.
보기 4.
(복소 벡터공간의 경우) 복소수 범위 \(\mathbb{C}^n\)에서도, 두 벡터 \(\mathbf{x}=(x_1,\dots,x_n)\), \(\mathbf{y}=(y_1,\dots,y_n)\)에 대해
\[ \langle \mathbf{x}, \mathbf{y} \rangle = \sum_{k=1}^n x_k \,\overline{y_k} \]
와 같이 켤레대수성(conjugate-linearity)을 포함한 내적을 정의할 수 있다. 이 경우 대칭성 대신 켤레대칭성(\(\langle \mathbf{x}, \mathbf{y} \rangle = \overline{\langle \mathbf{y}, \mathbf{x} \rangle}\))이 사용된다. 복소 힐베르트공간 등에서 이 개념이 중요하게 쓰인다.
다음 절에서는 이 내적을 이용해 어떻게 거리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벡터 간의 각도나 노름을 유도하는지 살펴본다.
내적을 통한 거리 개념
내적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응용 중 하나는, 내적을 사용하여 ‘거리(distance)’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다. 내적공간에서 벡터의 길이(노름)와 벡터 간의 거리, 그리고 벡터 사이의 각도(또는 직교성) 등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기하학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우선, 내적공간 \(\bigl(V, \langle \cdot,\cdot\rangle\bigr)\)에서 벡터 \(\mathbf{u}\)의 길이(또는 노름, norm)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mathbf{u}\| = \sqrt{\langle \mathbf{u}, \mathbf{u} \rangle}. \]
이 정의는 내적의 양의 정부호성(positivity)을 바탕으로, \(\langle \mathbf{u}, \mathbf{u}\rangle \ge 0\)임을 보장하므로 제곱근을 취할 수 있다. 또한 \(\|\mathbf{u}\|=0\)이면 \(\mathbf{u}=\mathbf{0}\)가 되어, 일반적인 길이 개념과 일치한다.
이제 두 벡터 간의 거리를 정의하기 위해, 유클리드 공간에서의 직관을 그대로 확장한다. 임의의 \(\mathbf{u}, \mathbf{v} \in V\)에 대하여,
\[ d(\mathbf{u}, \mathbf{v}) = \|\mathbf{u} - \mathbf{v}\|. \]
즉, 한 벡터에서 다른 벡터를 뺀 결과를 노름으로 취한 값이 곧 두 벡터 사이의 거리이다. 이는 실제로 거리 공리(양의성, 대칭성, 삼각부등식)를 만족하며, 내적공간을 하나의 ‘거리 공간(metric space)’로 인식하게 만들어 준다.
보기 5.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mathbb{R}^n\)에서 표준 내적을 사용해 정의한 거리이다. 즉, \(\mathbf{x}, \mathbf{y}\in \mathbb{R}^n\)에 대해 \[\langle \mathbf{x}, \mathbf{y} \rangle = x_1y_1 + x_2y_2 + \dots + x_ny_n,\] 로 두 벡터의 내적을 정의하고, 벡터의 노름과 두 벡터의 거리를 \[ \|\mathbf{x}\| = \sqrt{x_1^2 + x_2^2 + \dots + x_n^2}, \quad d(\mathbf{x}, \mathbf{y}) = \|\mathbf{x}-\mathbf{y}\|. \] 와 같이 정의한다.
덧붙여, \(\mathbf{u}\)와 \(\mathbf{v}\)가 이루는 각도(angle)도 내적에서 얻어진다. 예를 들어 실수 내적공간의 경우,
\[ \langle \mathbf{u}, \mathbf{v} \rangle = \|\mathbf{u}\|\|\mathbf{v}\|\cos\theta \]
라는 식을 통해, \(\theta\)를 벡터 간의 각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이때 \(\theta\)가 \(\tfrac{\pi}{2}\)라면 \(\cos\theta=0\)이 되어, \(\mathbf{u}\)와 \(\mathbf{v}\)는 직교(orthogonal)한다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내적공간은 단순한 벡터공간에 거리를 부여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이 거리 개념은 기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뒤이어 다룰 노름, 직교정규기저, 그람-슈미트(Gram–Schmidt) 과정 등도 모두 이러한 거리와 직교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