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인간 재정의기(2041~2051) - ‘인간 정체성 재구축기’
1. 2041년 윤리 규정 개정 이후
2041년을 기점으로, 기억 소거와 신체 교체 기술이 제한적이지만 합법적으로 인간 실험과 치료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는 윤리 규정이 마련되면서, 교육계 역시 근본적 충격을 받았다. 이 규정은 기존 생명윤리 체계를 크게 완화해, 일정 요건만 충족한다면 신체를 부분적으로 교체하거나 기억을 임의로 소거·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Chang(2042)는 이를 “인간 실존이 더 이상 유일무이한 고정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공식 인정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2030년대에는 인공지능과 신체 기술이 주로 보조적 역량을 키우는 수단 정도로 여겨졌다면, 2041년의 규정 이후로는 신체 교체와 기억 소거라는 급진적 수단까지 교육 현장에 도입할 여지가 열렸다.
당연히 이런 극단적 기술이 즉시 학교 수업으로 수용되지는 않았으나, 신체 교체를 비롯한 고강도 실험이 사회 일부에서 실시되었다는 소식은 학교가 인간 정체성과 윤리를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한층 깊이 자각하게 만들었다. Ryu(2043)는 이 흐름을 “학생이 자신의 신체와 뇌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사회적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 교육은 더 이상 지식 전달이나 기초 역량 형성을 넘어, ‘본인이 누구이며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도록 안내해야 하는 중추 기관이 된다”고 평했다. 학교 내부에서도 프로젝트형 학습이나 융합 교육과정이 확산되고 있었으나, 이제는 “신체 교체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지, 기억 소거가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 개인 책임은 무엇인지” 같은 문제를 정식 교과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제도적 측면에서, 2041년 윤리 규정 이후에도 중등·고등 교육과정이 즉시 대변혁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입시 체제와 국가 주도 교과과정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신체 교체와 기억 소거라는 급진적 사례는 의료·군사·특수 연구 분야에 국한된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컸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신체와 정체성이 영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나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전환이다. Morimoto(2043)는 이를 두고, “학교가 언제나 큰 틀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공간이라 믿어 왔는데, 이제 그 ‘인간다움’ 자체가 재설계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교육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 전제가 근본부터 흔들렸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교육계에서는 그런 충격을 교실 수업과 학교 운영 방식에 반영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인간 재정의기의 교육철학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2. 신체 교체‧기억 소거 시대의 교육철학
204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신체 교체와 기억 소거 같은 극단적 수준의 생체‧뇌 기술이 더욱 보편적인 용어로 사회적 담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하자, 교육철학 역시 새로운 틀 속에서 재정의될 필요성을 강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인간의 신체와 기억이 불변적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학생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인성을 함양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보았지만, 이 시점에서 학생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신체를 바꾸고 기억을 지우거나 심지어 특정 기억만 선택적으로 소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공론화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환경에서 기존의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물리적‧정서적‧윤리적 측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고, 학교가 어떠한 가치를 전수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해졌다.
Ryu(2044)는 이 시기를 두고 “학교가 더는 정체된 구조물로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고,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언제든 재설계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근본부터 되짚어보게 된 전환점”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재정을 갖춘 일부 국가에서는 신체 교체 수술이나 기억 개입이 의료‧연구 목적 외에도 제한적으로 허용되면서, 학교 현장에서 이를 경험하거나 접한 학생들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 사례들은 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자극했다. 예컨대 학생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교체하여 몸의 기능을 향상하고, 이에 따라 운동 능력 시험이나 실험실 실습에서 인공 팔다리나 감각 증폭 장치를 쓰는 일이 실제 가능해졌다고 할 때, 이 상황을 단지 “우수한 성취”로 인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교육 불평등”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이 불가피했다. Morimoto(2047)는 이 문제를 극단적인 예로 제시하면서, 기억 소거 기술이 허용된다면 학습 과정에서 생긴 고통스럽거나 불리한 기억을 지우고 재학습을 반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이렇듯 신체 교체‧기억 소거라는 개념이 보편화되는 사회에서 교육철학은, 학생의 “본래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부터 학교의 존재이유를 재설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거나 역량을 키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신체‧기억과 의도적으로 관계를 끊거나 수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학교가 개개인의 인간성을 보호하고 공동체 윤리를 확립하는 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얻었다. 이는 이전 시기(기술 통합기)까지만 해도 미래지향적 논의에 그쳤던 요소가, 실제 사례와 정책 실험을 통해 현실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교육철학이 단숨에 모든 학교에 스며든 것은 아니었다. 인프라‧정책‧교육과정이 뒤따르지 못해, 현실 다수 학교는 여전히 제한된 AI 활용과 부분적 융합 교육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Chang(2049)는 “인간 재정의기”에서 학교가 인정해야 하는 기본 전제는, 아이들의 신체나 기억이 절대적 고정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교육은 점점 “윤리, 공동체 의식, 자기 정체성”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가령 교사가 학생에게 “이 지식을 반드시 외워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AI나 기억 개조 기술이 어느 순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절대적 명령이 되기 어렵다. 학교가 고집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은 “네가 누구인지, 왜 사회 속에서 책임과 연대를 이어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주는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신체 교체‧기억 소거 시대에 도달하면서, 교육철학은 인간 자체가 전환 가능하다는 인식을 수용하고 학생에게 “경험”과 “윤리적 판단”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극단 기술의 남용을 예방하고,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살아가게끔 지도하는 책임감을 새롭게 짊어진 형태이기도 하다. 윤리적 고민과 함께, 공동체 차원에서 이를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면서, 학교는 마치 사회의 “인간성 안전벨트” 같은 위치를 맡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 재정의기”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이며, 학생들에게 몸과 기억이 자유롭게 변형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와 “우리”를 지킬 것인지 학교가 가르치고, 또 함께 탐색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근본적 변화라 하겠다.
3. 학교의 새로운 기능과 과제
인간 재정의기에 접어든 이후, 학교가 단순히 지식 전수나 기초 역량 습득을 넘어서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뚜렷해졌다. 신체 교체와 기억 소거가 실제로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에게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나의 신체와 기억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커다란 현실감과 함께 주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학교는 사람들의 윤리적·정체성적 고민을 다루는 장으로 부상했다. 과거에는 다소 추상적으로만 언급되던 인성 교육이나 윤리·철학 교육이 이제는 현실에서 학생의 신체 결정이나 기억 수정 여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그 비중이 한층 강화된 것이다.
신체 교체나 기억 소거 같은 기술을 악용하지 않도록, 학교는 미래 시민에게 필요한 지식과 윤리를 함께 가르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되었다. 이전 시기 기술 통합기에 이미 융합 교육과정이나 AI 활용 수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2040년대 중후반에는 “학생이 언제든 자신의 신체와 기억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인식하에, 과연 학생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획득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적 실천이 필요해졌다. Chang(2050)은 이 상황을 “학교가 ‘인간성 안전벨트’ 기능을 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기술을 통제하고 공동체 책임을 다하도록 길러 내는 공익적 공간”이라고 일컫었다. 이는 학교가 단순 지식이나 역량이 아니라, 존재론적 윤리·사회적 연대를 구체적으로 훈련하는 커뮤니티로 재편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는 학생이 자신의 몸과 기억을 지키고, 혹은 부분적으로 교체·소거를 선택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나 윤리 원칙을 준수하도록 안내하는 기제를 마련해야 했다. 신체 교체가 운동 능력이나 감각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남용될 가능성, 기억 소거가 특정 부정적 경험을 전부 지워 성찰 없이 반복될 위험성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는 학생에게 “기술의 장점과 위험”을 균형 있게 교육하고, “개인 자유와 공동선이 조화롭게 유지되도록 고민하는” 프로젝트나 시뮬레이션을 제공했다. 지식 습득 수업 이상의 정서·도덕 교육이 강화된 것은, 학교가 이러한 기술적 파장에 대비한 윤리적 지침서를 실제 행동 지침으로 구체화하고 적용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학교가 미래 인재를 육성한다는 인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기존의 ‘우수한 성적→대학 진학’ 경로에서 벗어나, “인공지능과 뇌기술이 융합된 사회에서 공동체에 기여하는 시민을 기르는” 비전을 내세우는 흐름이 본격화된 것이다. Ryu(2050)은 이를 두고 “학교는 전문가나 지식인의 사관학교가 아니라, 새로운 신체 기술과 기억 소거 가능성 속에서 서로를 지키고 이해할 수 있는 윤리 공동체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학생들은 단순 암기나 문제 풀이에서 벗어나, 생체기술과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을 아우르는 융합 수업을 통해 자신의 몸과 인식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를 체험하는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선택과 공동체적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탐색하게 되었다.
이렇듯 학교의 기능이 크게 확장되거나 변모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부담을 함께 수반한다. 예컨대 교사가 일반 교과 이외에 생체 윤리‧기억 소거 예방‧신체 교체 선택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룰 수 있도록 재교육해야 하고, 학생의 정체성 혼란이나 윤리 딜레마를 지원할 전문 상담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게다가 국가나 지자체는 학교가 이런 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하도록 입시 제도나 학사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Morimoto(2051)은 이를 가리켜 “학교가 미래 사회의 극단적 기술 가능성을 안전하게 조절하는 하나의 사회기관으로 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제도·재정·학부모 인식 전부가 조율되어야 한다”고 정리하였다.
결과적으로, 인간 재정의기에는 학교가 지식 전수나 역량 함양을 넘어, 학생들의 몸과 기억이 언제든 변형될 수 있는 사회에서 ‘윤리적‧정체성적 길잡이’로 확장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는 교육철학적으로 “인간이 누구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초실용적 문제로 다시 부상했음을 뜻하며, 학교가 이를 주도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공간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사 교육, 융합 교과, 상담 및 제도적 지원이 모두 필요하지만, 단순히 체제 변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적 합의도 함께 변화되어야, 학교가 진정한 의미에서 신체 교체·기억 소거 시대에 걸맞은 ‘인간 정체성 재구축’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