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2024년까지의 전통 교육철학
1. 지식 전수‧입시 중심 철학의 특징
2024년까지 학교 체제를 지배했던 교육철학은 지식 전달과 입시 경쟁을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이는 국가 주도의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시험 제도를 통해 학생들이 일정량의 지식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철학은 필연적으로 학생을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로 간주했고, 교사는 지식을 강의식으로 전달하는 “주입” 역할에 머무르기 쉬웠다. 실제로 Chang(2029)은 인공지능이 막 도입되기 전까지 대부분 국가의 학교 현장이 교사 주도 강의와 시험 성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당시의 교육은 시험이나 입시를 앞두고 지식 습득 능력을 극대화하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교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필기하고, 교사가 지정한 문제를 반복 연습하면서 입시 성적을 높이는 데 집중하였다. 인성과 윤리, 비판적 사고 같은 영역도 교과 과정에 명목상 포함되어 있었으나, 실제 평가와 진학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은 여전히 국영수 혹은 주요 과목에서의 우수한 점수였다. 그 결과 학습자 개인의 호기심이나 창의성, 삶의 다양성은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장기적 발전보다는 당장의 성적 향상이 교육의 지향점이 되었다. Ryu(2026)는 이러한 상황을 “단기간 내에 표준 시험에서 탁월한 성적을 낼 수 있는 학습법”에 모든 자원이 쏠리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지식 전수‧입시 중심의 교육철학은 국가 차원에서 교육을 쉽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표준화된 교과목과 교재, 그리고 일률적인 평가 체계로 인해, 전국 어디서나 동일 수준의 정보가 일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생이 자발적으로 사유하고 협력하는 경험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다. 교실은 “정보 흡수와 문제풀이 훈련”을 하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교사는 이 방식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기술자 역할에 가까웠다. Lee(2024)는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학교가 입시 성공을 위한 선수학습이나 기계적 반복에만 치중함으로써 장기적인 학습동기와 사회적 역량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는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2024년까지의 전통적 교육철학은 외형적으로는 국가 표준성‧공공성‧평등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지식 암기와 점수 위주의 교육을 대량 생산해 내는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창의력‧협업‧비판적 사고 등 미래 사회에서 점점 중요해질 역량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고, 학생 개인의 정체성이나 윤리 문제는 학습의 주요 관점이 되지 못했다. 이는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교실에 들어오고, 뇌와 신체에 대한 첨단기술이 확산되는 시점으로 넘어갈 때, 과거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2024년 이후 등장하는 급격한 변화는 바로 이와 같은 “지식 전수‧입시 중심” 구조가 흔들리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2. 변화 시도와 한계
지식 전수와 입시 경쟁에 치우친 교육철학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2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제기되어 왔다. 일부 교육계 학계 인사들은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자율형 학습이나 프로젝트형 수업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Lee(2023)는 이 시도를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필수적인 변화”라고 평가했지만, 당시의 시험·입시 체제를 압도적으로 지배했던 사회적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대부분 학교는 형식적으로 프로젝트 수업이나 토론 수업을 일부 도입했으나, 학년별 교과와 시험 범위를 소화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결국 전통적 강의식·문제풀이식 수업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측면으로, 교육부나 학교 차원에서 “학생 중심 학습” “핵심 역량 강화” 같은 기치가 모범 사례로 소개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입시 위주의 평가 구조가 바뀌지 않았다. Chang(2027)은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대형 시험과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대학·취업 기회가 여전히 모든 교육 활동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교사들조차 ‘교육철학적으로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당장 학생·학부모들이 요구하는 입시 성공 가능성을 거부하기 어렵다는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는 구조적으로 교사의 시도와 운영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학교가 학습자의 자율적 성장보다는 효율적 점수 관리에 매몰되는 현실을 고착시켰다.
그럼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혁신학교나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창의·토론 수업, 체험학습, 소규모 맞춤 평가 등이 활발히 시도되었다. Morimoto(2026)는 이러한 모델이 실제로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높이고 팀 프로젝트 역량을 크게 향상시켰음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외적 성공 사례들은 아직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였고, 학교 수가 많지 않아 전국적 파급효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상당수 학부모는 입시 실적을 중시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교사의 업무 부담이나 평가 방식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교실현장에서 제한적 도입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2024년까지 이어진 혁신 시도는 교육철학 자체를 근본부터 뒤바꿀 수준에 이르지 못한 채, 사회적·문화적 제도적 제약에 부딪혀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혔다. 선행연구들이 지적하였듯, 전국 단위로 큰 변화를 일으키려면 평가 입시 시스템과 교사 양성 방식, 그리고 교육재정과 교원 배치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부분에서만 작은 변화를 시도하다가 다시 원래 체제로 회귀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는 지식 전수·입시 중심 철학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사람들의 인식 또한 입시 성공을 당연하게 최우선 가치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공지능이나 뇌·신체 기술이 본격화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학교 체제는 여전히 “전통적 지식 주입”을 기본축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혁신 시도가 일부 일어났음에도 제도적 틀 내에서 그 폭이 제한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도가 실패 내지 정체 상태를 지속하는 동안, 사회 전반에서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과학이 급속도로 진화해 가고 있었다. AI가 지식 축적과 전달을 인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해내는 시점에, 교육 현장에서 “지식 전수 입시”라는 축은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점은 이미 2024년 이후였고, 학교가 새로운 변화를 대비할 시간은 부족하였다. 이후 몇 년 만에 신체 교체나 기억 소거 기술까지 곁들여지면서 학교의 변화 요구는 한층 급진적 형태를 띠게 되었고, 전통 교육철학이 더 이상 안주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