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by LY4I

우리는 일상에서 ‘같다’라는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이를테면 이틀 연속 라면 전문 식당에 방문하면서, “나 오늘도 어제랑 같은 라면 먹을 거야.”라고 말하는 식이다. ‘같은 라면’이라는 표현에서 어제의 라면과 오늘의 라면은 명백히 다른 물리적 대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법적으로 당연히 같은 사람이지만,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그 답이 달라질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만물이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다’라는 개념은 엄밀하게 정의하기가 까다롭다. 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에서는 등호 ‘=’를 사용하여 ‘같다’를 표현하지만, 사실 수학에서도 ‘같다’라는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복잡한 작업이다. 직관적인 집합론에서는 두 집합이 ‘같다’라는 개념을 “두 집합이 정확히 같은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 ‘같은 원소’라는 표현 자체에서 이미 ‘같다’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두 식 \(2x + 4x\)와 \(6x\)는 같은 식일까?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2x + 4x\)를 동류항끼리 계산하면 그 결과는 \(6x\)이기 때문에 \[2x + 4x = 6x\]와 같이 등호를 사용하여 나타낼 수 있고, 두 식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문론적 관점에서 두 식의 구조를 보면, \(2x + 4x\)는 두 항의 합으로 이루어진 식이고, \(6x\)는 하나의 항으로 이루어진 식이므로, 두 식은 다른 식이다.

이처럼 얼핏 보기에 같아 보이는 대상이이 수학에서는 다를 수도 있고, 직관적으로 달라 보이는 대상이 수학에서는 같은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수학자들은 ‘같다’라는 개념을 더 정확하고 유용하게 정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는 단순히 학문적인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같다’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수학의 근간이 단단해질 수도 있고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프레게가 제안한 집합론의 공리계에서는 ‘같다’라는 개념이 ‘러셀의 역설’과 같은 모순을 함의하여 전체 이론이 붕괴될 위기에 놓이기도 하였다.

수학에서 ‘같다’라는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자.

수학에서 ‘같다’라는 개념은 단순히 두 대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넘어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로 기하학에서 사용하는 ‘합동’이라는 개념을 들 수 있다. 두 평면도형이 서로 다른 위치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다고 해도, 하나를 회전하거나 평행이동하여 다른 하나와 완전히 겹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두 도형이 ‘합동인 관계에 있다’라고 말한다. 이는 일종의 ‘같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같은 크기의 정삼각형 두 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는 밑변이 수평선과 평행하게 놓여 있고, 다른 하나는 밑변이 수평선으로부터 30도 기울어져 있다. 이 두 삼각형은 놓인 방향이 다르지만 합동이며, 따라서 기하학적으로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같음’의 개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도형이 놓인 위치나 도형의 방향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두 도형이 합동이더라도 두 도형을 서로 다른 대상으로 다루어야 한다. 이는 ‘같다’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수학자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특정한 관점 아래에서 두 대상을 같은 것으로 볼 필요가 있을 때 ‘동형’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동형은 두 수학적 구조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선형대수학에서는 동일한 체(field) 위에서 정의된 두 벡터공간의 구조가 일치할 때, 이 두 공간을 ‘동형인 벡터공간’이라고 부른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n\)차원 실수 벡터공간 \(\mathbb{R}^n\)과 \((n-1)\)차 이하인 실수 계수 다항식의 공간은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벡터공간으로서 두 공간의 구조가 동일하므로, 두 공간은 동형이다. 위상수학에서는 두 위상공간 사이에 양방향 연속함수가 존재하여 두 공간의 위상적 성질이 보존될 때, 이 두 공간을 ‘위상동형’이라고 부른다. 손잡이가 하나 달린 커피잔과 도넛은 완전히 다른 모양이지만 구멍이 하나라는 점에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두 도형은 위상동형이다. 즉 구멍이 하나인 입체도형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위상학적으로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수학자들은 ‘동형(isomorphic)’이라는 개념을 통해 특정한 관점 아래에서 서로 다른 대상들을 ‘같은 것’으로 본다. 동형이라는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큰 장점은 동형인 여러 대상 중 하나를 연구하여 얻은 결과를 다른 대상에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학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서로 다른 분야 사이의 지식 전이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n\)차원 실수 벡터공간 \(\mathbb{R}^n\)과 \((n-1)\)차 이하 실수 계수 다항식의 공간이 동형이라는 사실은 매우 유용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클리드 공간인 \(\mathbb{R}^n\)의 성질들을 사용하여 다항식 공간의 성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형인 대상들이 공유하는 특징을 우리는 ‘동형성에 의해 보존되는 성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위상동형인 두 공간에서는 연결성, 컴팩트성, 하우스도르프성 등의 위상적 성질이 보존된다. 동형인 여러 공간이 있을 때, 그 중 한 공간이 이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면, 동형인 모든 공간이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게 된다. 수학자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수학적 구조를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이제 동형이라는 개념을 한 단계 더 추상화한 ‘카테고리 이론’을 살펴보자. 카테고리 이론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수학의 분야로, 수학적 구조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카테고리는 ‘대상(object)’과 그들 사이의 ‘사상(morphism)’으로 이루어진 구조이다. 여기서 대상은 집합, 군, 위상공간 등의 수학적 구조를 이르며, 사상은 함수, 준동형사상, 연속함수 등을 이른다. 카테고리 이론의 핵심은 이러한 대상들과 사상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이론에서 동형의 개념은 ‘동형사상(isomorphism)’으로 일반화된다. 동형사상은 가역적인 사상, 즉 역사상이 존재하는 사상을 말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다양한 수학 분야에서의 ‘같음’의 개념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집합론에서의 전단사 함수, 군론에서의 동형사상, 위상수학에서의 위상동형사상 등은 모두 각자의 카테고리에서 동형사상이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수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같다’라는 개념을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카테고리 이론은 ‘함자(functor)’라는 개념을 통해 서로 다른 카테고리 사이의 관계도 다룬다. 함자는 한 카테고리의 구조를 다른 카테고리로 옮기는 대응이며, 함자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서로 다른 수학 분야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할 수 있다.

이처럼 카테고리 이론은 ‘같다’는 개념을 더욱 추상적인 수준에서 다루며, 수학의 여러 분야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강력한 도구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인 흥미에 그치지 않고, 현대 수학과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학에서 ‘같다’라는 개념이 어떻게 정의되고 발전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이처럼 수학에서는 ‘같다’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조차 직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엄밀하게 정의하고 사용한다. 이는 ‘같다’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수학에서 다루는 모든 개념에 해당된다. 이렇게 엄밀성을 추구하는 태도는 수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개념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더 정확하게 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은 수학을 더욱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학문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예상하지 못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기도 한다.

이같은 접근 방식은 수학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이와 같은 태도가 요구된다. 철학, 이론 물리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학적 사고방식이 활용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은 엄밀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학의 매력이 그 엄밀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학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엄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우아하고 조화로운 구조에 있다. 앞에서 살펴본 ‘동형’이나 ‘카테고리’와 같은 개념은 수학의 다양한 분야를 하나로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 역할을 한다. 수학자 G.H. 하디는 “수학자도 화가나 시인처럼 패턴을 만든다. 수학자의 패턴이 화가나 시인의 패턴보다 더 영속적이라면, 그것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수학의 아름다움이 감각적 쾌감을 넘어서는 깊고 영속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같다’라는 개념 하나를 통해 수학의 엄밀성, 그리고 그 엄밀성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일부를 엿보았다. 물론 이 글에서 살펴본 수학의 특징은 수학의 거대한 세계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수학이 단순한 계산이나 추상적 이론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언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학의 세계는 깊고 넓다. 그리고 그 여정의 모든 단계에서 논리의 엄밀함과 구조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수학에 매료되는 이유이며, 수학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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