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AI 등장기(2024~2030) - ‘예비역량기’
1. 사회‧기술 환경 변화
2024년을 기점으로 인공지능은 단순 검색 엔진이나 번역기 수준을 넘어, 인간의 학습 과정을 대규모로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AI는 수업 영상을 자동 생성하고, 학생의 문제 풀이를 실시간 분석하여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할 정도로 정교해졌다. 지식 자체를 체계화하여 제공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훨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고, 이는 학교가 담당해 온 지식 전달 역할이 빠르게 위축될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전환은 사회 전반에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Chang(2029)은 “AI가 지식 습득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24시간 무료로 맞춤 학습 코칭을 해 줄 수 있게 되면, 학생들은 굳이 교실에 앉아 수동적 강의를 들을 이유가 적어진다”고 진단하였다. 이어서 그가 지적한 것은 “학교가 지식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청소년들은 학교 제도를 회피하고 간단히 AI 기반 학습만으로 수월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학생이 왜 교실에 머물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해야 하는 시대적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동시에 정부와 기업들은 AI 기술을 산업‧행정 전 영역에 적용하며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지만, 윤리적 법적 지체 때문에 교육 부문에선 도입이 다소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Ryu(2027)는 이 시기를 “학교가 AI를 접목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입시 체제가 지식암기에 묶여 있어서 AI가 제공하는 맞춤 학습을 단순 참고 도구 수준으로 간주하는 과도기”라고 표현하였다. 교사들은 AI 교사 보조 시스템을 활용해 학생 과제나 시험을 채점하거나 개인별 진도 관리를 해 보려고 했으나, 정작 시험이나 평가 체계가 기존 입시 중심에서 바뀌지 않았으므로 근본적인 변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신학교나 대안교육 분야에서는 인공지능과 결합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소수 학생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AI가 실시간으로 각 학생의 이해도와 문제 해결 과정을 분석해 다음 학습 목표를 제안해 주는 식의 협력형 학습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한두 가지 성공 사례가 언론에 주목받으면서, “학교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역량 개발 인성 협업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의가 대중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예비역량기”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은, 학생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을 학교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아직 교육 체계 전반을 뒤흔드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사회‧기술 환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음에도, 학교 현장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 속에서 큰 방향 전환을 주저하였다. 대부분 학교는 AI를 시험 성적 향상 도구로 활용하는 선에서 만족했고, 윤리나 정체성 같은 본질적 이슈에 깊이 다가가진 못하였다. 그 결과 2030년대로 접어들 즈음, AI가 지식 암기를 넘어 사람의 인지 과정 전반에 관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사회는 학교가 과연 어떠한 비전과 철학을 지녀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더욱 강하게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학교는 곧 닥쳐올 더 큰 변화를 수용할 준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로, 기술 통합기인 2030년대 중반 이후를 맞이하게 된다.
2. 교육철학의 동요와 재편 시도
인공지능이 지식 전달과 학습 지도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존 교육철학은 2020년대 말부터 눈에 띄는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학교는 지식 전달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왔고, 학생들은 주로 교실 수업과 교과서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는 상태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굳이 교실에 모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등장하자, 학교의 존재 이유와 교사 역할이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Ryu(2028)는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교실이 정보 제공자의 공간이 아니라면, 남는 건 인간적 관계와 역량 형성”이라고 지적하면서, 교육 이념 전반을 재검토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이 시기, 일부 교육학자와 혁신가들은 학교가 “인공지능이 제공할 수 없는 가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창의성, 협력 능력, 윤리의식, 감정 조절 같은 역량은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기계가 직접 학습해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보았다. Lee(2029)는 “AI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식 습득 자체가 쉽고 자동화된다면, 학생들은 보다 심도 있는 탐구나 집단 프로젝트에 몰두할 시간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입시 체제와 결부된 강력한 교육 관행과 충돌하였다. 대부분 교사와 학부모는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면 여전히 기존 방식의 문제 풀이와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고 믿었고, AI가 이를 효율화해 줄 도구로 여겼다.
이렇듯 본격적으로 재편된 교육철학이 학교 내 제도나 수업에까지 충분히 반영되기에는 구조적·문화적 장벽이 높았다. 실제로 여러 지역 교육청이 AI 도입 시범학교를 운영했으나, 지식 위주 평가가 여전한 상황에서는 학생·교사가 AI를 통해 개인 맞춤 학습을 실시하고도 결론적으로 시험 문제 풀이 숙달에 매달리게 된다고 보고된 바 있다(Morimoto, 2029). 그 결과, 프로젝트형 역량 교육이나 협력학습에 쓰일 수 있었던 AI가 단순한 ‘속성 문제풀이’ 도구나 ‘학습 진도 관리’ 수단에 머무르기 쉬웠다. 이는 학교가 내심 “지식 전수‧입시”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AI 활용 혁신”을 외치는 이중적인 태도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지식 학습을 넘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역량’을 강조하는 움직임은 조금씩 힘을 얻었다. 학습자가 과정을 주도하고 협력에 기반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 학습동기를 찾는 시도들이 AI 교사와 결합했을 때, 이전에 비해 훨씬 큰 교육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가 일부 혁신학교에서 보고되었다. 이른바 “예비역량기(Pre-Competency Era)”라는 명칭은, 아직 완전한 역량기반 교육으로 전환하지 못했지만,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계기로 기존 교육철학이 뚜렷이 동요하고 있고, 학생과 교사 모두 역량 중심 수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다만, 이 시기에는 체제 전환이 그리 급속도로 진행되지 못했으며, 대다수 학교는 아직 “AI로 보조를 받되, 입시 및 지식학습 중심”의 절충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2030년 무렵에 도달하기 전후로, 교육철학은 점차 “단순 지식 습득이 아닌 역량 형성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제도와 평가 체계가 뒷받침되지 못해 부분적‧실험적 시도에 그치는 상태였다. 학교와 교사가 미래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분명 존재했으나, 사람들은 아직 인공지능의 위력이 한정적이리라 예상했기에 근본적 변혁을 미루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2031년 이후 신체 기술과 뇌 과학이 급진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학교가 교육철학을 바꾸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 도래했다는 사실이 한층 분명해지게 된다.
3. 학교 역할 전환의 초기 단계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2024년부터 2030년에 이르는 시기는, 학교가 지식 전달을 넘어 더 폭넓은 역량을 길러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했음에도,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절충적 모습을 보이는 단계였다. AI에 의해 대량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음이 확인되었으나, 입시와 지식 평가에 익숙한 구조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어 학교는 미처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부 학교들은 교실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수준에 맞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협력학습 과정을 강화하는 식으로 기존 틀에서 벗어날 단서를 마련하였다.
이 시기에 학교가 통상적인 수업 방식과 입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 애썼던 이유는 교육 체제의 관성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AI가 단기간 내에 교육의 모든 것을 뒤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Chang(2029)은 이 상황을 두고, 상당수 교사와 행정가가 AI를 일종의 ‘보조 자료나 채점 도구’ 정도로 생각해 오히려 교실의 주도권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여겼다고 분석하였다. 실제로 AI 도입을 혁신적 면모로 소개한 학교들도,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입시 성적이나 표준화된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해 AI를 사용했을 뿐, 교육과정 자체를 바꾸는 데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학교 일부 영역에서 이루어진 자발적 실험과 시도는, 교육철학에 어느 정도 파문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Lee(2029)는 AI 튜터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정하고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 수업 모형을 도입했을 때, 교사가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들과 깊은 대화‧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AI를 통한 지식 학습”과 “사람 대 사람의 상호작용”을 적극 분리‧재조정해, 인문·예술·윤리적 논의나 심층 프로젝트 중심의 소집단 활동 시간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이런 시도가 곧바로 주류를 형성하진 못했지만, 지식 위주의 교육철학이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학교가 역할을 조금씩 재정비하면서 주목했던 또 하나의 요인은, 학습자의 “개별 역량”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기존 입시 체제에선 모든 학생이 같은 교과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배워 왔지만, 인공지능 도움을 받게 되면 각 학생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거나 취약한 분야를 중심으로 맞춤 학습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때 교사는 오히려 인간적 감성‧윤리‧협력 능력을 기르는 학습 환경을 설계하고, 아이들이 서로 협동하여 과제를 해결하거나 탐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지도하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Ryu(2028)는 이를 두고 “기존 교실에서 흔히 보던 시험 대비 반복 훈련이 아닌,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역량을 예비적으로 육성하는 시도가 시작된 시기”라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학교가 처음으로 “역량 중심”이라는 방향성을 의식하고, AI 의존도를 일부 적극 활용하며 수업을 재구성하려는 초보적 움직임을 보였다 해도, 모든 학교가 그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다수 일반 학교는 여전히 입시 집중 체제를 유지했고, AI가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수업 방식을 고수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따라서 이 시기를 “학교 역할 전환의 초기 단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직 넓은 사회·제도 차원에서 본격적인 정책 지원이나 평가 혁신이 결합되지 않아,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철학이 부분적으로만 뿌리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 연구가 이 시기를 “예비역량기”로 명명한 것은, 전통적 지식 전수 중심 교육이 무너질 기미가 서서히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AI가 지식의 상당 부분을 손쉽게 대체함으로써, 학교가 역량‧윤리‧협력‧창의성 등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일종의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교사와 물리적 공간이 가지는 의미”를 비로소 모색하기 시작했고, 부분적으로나마 학생 주도 학습과 윤리·정체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 변화가 완전히 제도화되지는 못했으나, 차후 기술 통합기가 시작될 때 더욱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 단계를 미리 닦아 놓은 셈이었다.